[사설]국가보안법보다 급한 일들

  • 입력 2001년 1월 16일 19시 06분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은 고치는 것이 옳지만 지금 당장은 그 시기가 아니다. 보안법은 분명히 시대에 뒤진 법률이며 오늘의 남북 현실에 비추어도 모순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반(反)국가단체 정부참칭 규정(제2조) 같은 것은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과도 맞지 않는 규정이다. 불고지죄(제10조)는 법조문 구실을 잃은 지 오래다. 찬양 고무(제7조) 규정도 무죄 집행유예로 떨어지는 케이스가 90%가 넘어 공권력 남용의 근거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는 보안법 개정문제를 놓고 ‘북에서 노동당규약 북한형법을 고칠 태세가 아니니 우리도 고쳐서는 안된다. 우리부터 무장해제한다는 말인가’라는 논리에 찬성할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경협이 진행되는 시대에 걸맞게 보안법을 고쳐 현실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북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합리적 법치 구현, 그리고 외국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우리의 필요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북한이 ‘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것 또한 자가당착이요 잘못임을 지적해 둔다. 북한은 16일에도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위원장 이름으로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법적 제도적 장애물 제거’ ‘대결시대의 유물 없애기’를 말하며 보안법을 거론했다. 그렇다면 대남 무력적화통일을 명시한 북측의 노동당규약은 대결시대의 유물이 아니며, 장애물이 아닌지 묻고 싶다. 북한은 그 철폐를 먼저 밝히고 보안법을 거론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남북이 현실에 걸맞게 법률적 모순과 상충을 자발적으로 고쳐 나가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조처다. 그런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최근 보안법 개정의사를 ‘강력히’ 밝히고 당정이 법개정을 서두르는 자세를 보이자 이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국회 여건과 정당간의 극심한 정쟁(政爭), 어려운 경제 상황 등에 비추어 이 시점에서는 보안법 개정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다.

보안법 개정을 둘러싸고 민주당 안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공동정부의 한 축인 자민련도 난색을 보이며, 한나라당도 반대로 돌아선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자칫 무리한 개정추진은 ‘남남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대북 시각의 차이에 따른 갈등과 반목을 키우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차분한 개정방향을 논의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끄는 개정이 되기 위해서는 시한에 쫓기듯이 추진해선 안될 문제이다. 당장은 국정의 우선 과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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