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르 씨지엠 구만재 대표 “병원 인테리어의 명제는 단순함”

  • 입력 2014년 12월 15일 1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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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씨지엠 구만재 대표는 공간을 넓히거나 좁히거나 조이거나 열어주는 일을 한다. 그의 건축&인테리어 회사인 ‘르 씨지엠’은 파리의 여섯 번째 지구를 부르는 이름으로, 구 대표가 건축과 디자인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경영학도였던 그가 여행차 갔던 파리에 반해 공간에 대한 배움을 시작한 인연도 이색적이지만, 잠깐 한국에 들어와 맡게 된 프로젝트를 계기로 10년째 건축과 인테리어 일을 이어가고 있는 사연도 재미있다. 당시 그를 필드로 끌어당긴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병원 프로젝트였다.

EDITOR 곽은영 PHOTOGRAPHER 권오경 COOPERATION 르 씨지엠


공간의 기본은 사람

구만재 대표의 첫 프로젝트는 목동의 MD치과로 지금까지도 보수 한 번 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 실무경험이 없던 시절, 구 대표가 디자인에서 감독까지 맡았던 곳이라 지금도 애정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이후 그는 주택 프로젝트, 갤러리 등 다양한 프로젝트와 함께 일반병원 프로젝트를 30~40건 진행했다.

“병원은 목적성이 확실하고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은 공간이에요. 병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실제 병원에서 필요한 건 기능적인 부분이라는 걸 알았어요. 병원에서는 항균과 청결을 표현하되 삭막하지 않게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와 관련해 구만재 대표는 파리 학교에 다니면서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입원실 디자인을 할 때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병원의 색은 하얀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천장까지 하얀색으로 인테리어를 했더니 선생님께서 ‘너는 아파서 누워본 적 있니?’라고 묻더군요. ‘네가 나이가 들어서 일주일 이상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하얀 침상만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공허하겠니’라고요.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누워있는 환자가 많은 병원의 천장은 짙은 갈색이나 짙은 회색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야 눈이 피로하지 않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거든요.”

병원에서 깨끗함을 강조하기 위해 흰색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은 정작 환자의 입장은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병원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환자, 즉 사람이다.

공간의 기본은 사람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동선이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의 클리닉들은 대기실을 카페나 갤러리처럼 화려하게 꾸며달라는 요청을 많이 한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디자인과 장식적인 요소를 넣고 싶다는 것이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환자들도 기왕이면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다.

“일본에도 그런 곳이 몇몇 있지만, 파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그만 클리닉은 대부분 의사의 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파리에서 제가 다니던 치과도 집에 의자만 세 개 두고 있었어요. 그곳의 클리닉은 생활밀접형이에요. 우리나라의 클리닉에는 마케팅의 원리가 적용돼요. 그러면 디자인이 심플하게 나올 수가 없어요. 다행히 클리닉 쪽으로는 저희가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 있어서 조절하려고 노력해요. 병원은 기본적으로 병원다워야 하므로 과도한 장식이나 지나친 가공제품, 오염물질을 생산하는 패브릭이나 가죽 대신 금속, 세라믹 타일, 원목처럼 일차가공만 돼 소재 본연의 느낌이 살아있는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공간감과 단순성이 중요한 병원

르 씨지엠이 최근 끝낸 병원 프로젝트는 신사동에 있는 그랜드 성형외과 사옥이다. 지하 6층, 지상 15층의 건물로 총 스무 개 층의 층고부터 시스템, 디자인까지 모두 르 씨지엠이 맡아 진행했다.

“성형전문병원으로서의 특화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원장님과 대학병원을 열 번도 넘게 방문해서 수술실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어요. 전체 마감, 바닥, 조도 등도 새롭게 적용했어요. 처음으로 수직 동선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커요. 보통 몇 개 층을 쓰는 병원은 대기실이 1층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랜드 성형외과 신사동점은 대기실을 가장 꼭대기 층으로 올려 스카이라운지로 만들었어요. 병원을 찾는 고객은 꼭대기 층인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게 돼요. 로비층은 천장을 10m 더 높게 만들어서 탁 트인 느낌을 주는데, 여러모로 공간감을 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였어요.”

구 대표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르 씨지엠 사무실을 둘러봤다.

“이곳이 제가 한국에서 처음 진행한 집 프로젝트예요. 보시다시피 공간마다 천장의 높낮이가 달라요. 이런 게 공간이에요. 공간을 넓히고 좁히고 조이고 열어서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사실 조그만 클리닉은 그렇게 할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한 평을 살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해요.”

구만재 대표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단순함이다. 그는 단순함을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한 번에 두 곡을 들을 수는 없는 것에 비유했다.

“제가 베토벤과 소녀시대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두 음악을 동시에 들을 수는 없어요. 이것이 단순함의 기본 원리 중 하나예요. 단순하다는 건 좋은 것 중 하나만 취하는 겁니다. 그것이 핵심이에요. 이 단순성이란 개념은 병원과 잘 어울려요. 병원이란 곳은 복잡하지 않고 깨끗해야 하는 공간이니까요.”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공간

그는 언젠가 의사와의 미팅에서 “병원에서 인테리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20% 이하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의사의 생각은 달랐다. 구 대표는 그때의 대화가 병원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의사 선생님이 제게 ‘당신이 오해하는 게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우리는 심각한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예방의학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클리닉은 치료보다 심리적 안정을 돕는 역할을 하므로 환자에게는 공간이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라고요. 그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르 씨지엠에서는 주택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주택의 가장 큰 이야기 중 하나는 관계성이다. 주택에서는 창을 통한 내외부의 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아무리 전망이 나쁜 창이라도 거길 막고 좋은 그림을 걸어두는 것보다는 창을 열어두는 게 좋다고 했어요.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첫 프로젝트를 하면서 주변이 지저분해 창을 막을까 고민할 때 그 말이 생각났어요. 결국, 창을 살렸는데 훨씬 좋더라고요. 아무리 실내 공간이라 하더라도 실내에만 머물면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해요. 도심에서 인간과 자연의 최소한의 소통 통로를 만들어주는 게 창이에요. 그래서 주택 프로젝트에서 쌓은 노하우를 병원에서도 살리려고 해요. 실내에 있지만, 실외와 통하고 있다는 관계성은 병원에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취재 곽은영 기자(www.egihu.com) 촬영 권오경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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