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 염기 콕 집어 교정… DNA 손상 줄이는 기술 주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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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 치료제 승인 6개월… 안전성 높일 방법은
작년 영국-미국 승인 ‘카스거비’
임상시험 환자 사망 사례 보고… DNA 손상-면역 이상 등 부작용
국내서 염기-프라임 교정 연구… 부작용 억제 기술 세계적 수준
“다양한 세포 적응 연구 필요”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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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 유전자를 교정하는 유전자 가위 치료제가 전 세계에서 첫 승인을 받은 뒤 반년이 지났다.

지난해 11월 영국 보건부 산하 의약품·의료기기안전관리국(MHRA)이 12세 이상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베타(β)-지중해빈혈증 환자를 대상으로 승인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치료제 ‘카스거비’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임상시험 참가자가 아닌 환자에게 투약된 사례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치료제가 임상 현장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수십억 원에 이르는 비용과 함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가위 치료제 도입이 본격화하기 위해선 부작용에 대한 기술적 보완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 임상시험 환자 사망 사례로 안전성 우려

26일 학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전달한 20대의 듀센근이영양증(DMD) 환자가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DMD는 보행 등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근육이 극도로 약해지는 유전성 질환이다. 치료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유전자 가위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아데노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폐 손상이 사망 원인으로 분석됐다.

12세 이상 겸상 적혈구 빈혈증에 대한 유전자 가위 치료제 카스거비는 영국에 이어 지난해 12월 미국에서도 승인됐다. 잇따른 허용으로 유전자 가위 치료제가 적용되는 사례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임상시험 과정에서 사망 사례가 이어지자 학계에선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불식되지 않았다. 유전자 가위 치료제는 유전자의 삽입과 절단이 동시에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DNA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손상을 미처 회복하지 못한 유전자는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유전자 가위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아데노 바이러스가 야기하는 면역체계 이상도 치명적인 부작용의 원인으로 꼽힌다.

● ‘크리스퍼 유전자 연필’ 기술로 보완

학계에선 기존 기술을 보완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대표적으로 DNA 손상을 극복하기 위한 ‘크리스퍼 유전자 연필’ 기술이 주목받는다. DNA의 기본단위인 염기를 다른 염기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DNA를 절단하지 않고 단일 염기에만 손을 대는 ‘염기 교정(Base Editing)’과 특정 염기를 정교하게 교정할 수 있는 ‘프라임 교정(Prime Editing)’ 기술이 활용된다.

한국은 새로운 유전자 가위 교정법을 활용해 부작용을 억제하는 연구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차혁진 서울대 약학과 교수 연구팀이 이 두 교정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DNA 손상 신호와 복구 신호를 동시에 억제하는 방식으로 DNA 손상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유전자 가위 치료제 기술 발전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국도 전략적인 연구 육성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차 교수는 “현재 국내 대부분의 유전자 가위 교정 기술은 새로운 교정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돼 있는데 앞으로는 이 기술을 어떤 세포에 적용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유전자 가위 치료제 연구는 주로 암세포로 이뤄진 세포주를 대상으로 유효성을 확인해왔다. 그러나 암이 아닌 질환을 가진 환자의 경우 암세포가 아닌 유도만능줄기세포(iPSCs)에서 교정이 이뤄진다. 암세포주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유도만능줄기세포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가위를 포함한 유전자 치료제 연구가 원활하게 이뤄질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천성 망막질환(IRD) 유전자 치료제를 연구하는 김정훈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환자 맞춤형 개발이 중요한 유전자 치료제의 특징을 고려해 연구와 진료가 통합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센터 개념의 연구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대수 KAIST 생명과학기술대 교수는 “광범위한 의미의 유전자 치료제 연구를 위해선 환자 의료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내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 의료데이터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유전자 가위#치료제#크리스퍼 유전자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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