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고통만큼 편견도 아픕니다… 희귀질환도 떳떳하게 치료받을 수 있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삼중고 시달리는 희귀질환자들
진단 환자 100명뿐인 혈관부종
병 제대로 몰라 아들도 같은 고통…응급주사 말고는 치료제 없어
1형 당뇨병, 인슐린 주입이 필수…인식개선 위해 병명 바뀌길 기대
활동 제약 많은 전신 농포성 건선…발병하면 몇달간 입원치료 해야
희귀 질환임에도 국가 지정 못받아

지난달 29일 세계 희귀질환의 날을 맞이해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환우 가족들이 돌봄과 휴식을 누리는 행사에 참여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제공
지난달 29일 세계 희귀질환의 날을 맞이해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환우 가족들이 돌봄과 휴식을 누리는 행사에 참여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제공

희귀질환 환자는 치료제 개발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 혹은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고가의 치료제로 인한 경제적 부담, 그리고 사회적 편견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들은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거나 주기적인 치료로 관리를 잘 받으면 어려움 없이 학교 및 직장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다.

희귀질환이 치료와 관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질환인데도, 유전병에 대한 죄책감과 부담으로 인해 질환 사실을 알리지 못하기도 한다. 감염이 될 수 있다는 오해를 받아 치료를 포기하고 사회로부터 숨는 경우도 있다. 더 많은 희귀질환 환자가 치료를 통해 사회에 복귀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떳떳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편견들을 바로잡고 질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형성될 수 있도록 환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유전성혈관부종 환자 민수진 유전성혈관부종환우회장
12세인 초등학교 5학년부터 35년간 심한 ‘부기’ 증상을 앓아왔지만, 응급실을 가도 병명을 알 수 없었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고통을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준 부모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혈관이 붓는 질병으로 언제, 어떻게, 어디로 부종 발작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어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지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진단받은 환자도 100명 미만으로 극소수의 환자가 이 병을 앓고 있다. 부기의 정도가 매우 심하고 신체, 장기 구분 없이 부종이 발생해 일상생활이 매우 어렵다. 갑자기 저혈압 쇼크로 기절하거나 장기 주위 부종 발생 시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과 두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또 이 병은 아이에게 그대로 유전되어, 같은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됐다.

어느 날 길을 걷다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제 아이가 그대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괴롭다. 또한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 시선에서도 저와 제 가족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유일한 치료제인 응급주사가 있지만, 약효 지속성이 낮아 발작 빈도가 높거나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게는 추가적인 예방약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평생 우리 가족과 환우들은 부종의 발작뿐만 아니라 이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치료제가 하루빨리 도입되어 제 아들과 저와 같은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제1형 당뇨병 환자 김환희 씨
2011년 겨울 독감에 걸렸다. 내과에서 주사와 약물치료를 받았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내원해 1형 당뇨병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1형 당뇨병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는 베타세포를 파괴해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국내 당뇨병의 2% 미만 수준으로 발생하며, 유병 인구는 약 4만4000명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30세 이전에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1형 당뇨병은 외부에서 인슐린 주입이 필수적인 질환이다. 인슐린 주입이 필요한 시간대가 정해져 있지 않고 하루 24시간 고혈당과 저혈당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안정적인 혈당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이때 장소와 상황을 떠나서 당분의 섭취가 필요할 때도 있고 인슐린 주사가 필요할 때도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복부 팔 등의 인슐린 자가 주사를 놓아야 한다. 자가 주사를 하는 것에 대해 주변에선 대부분 낯설어하고 불편해한다. 시력이 떨어진 사람이 안경을 쓰고, 천식 환자가 호흡기를 사용하고, 고혈압 환자가 약을 먹듯 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인슐린 주사가 필요할 때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해주면 좋겠다. 또 1형 당뇨병 및 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1형 당뇨병의 병명이 변경되었으면 좋겠다. 당뇨병이라는 건 말 그대로 당 성분이 소변으로 배출된다는 의미이다. 1형 당뇨병은 관리하면 소변으로 당 성분이 배출되지도 않는데 병명이 부정적인 느낌을 항상 주기 때문이다.

전신 농포성 건선 환자 김재진 씨
다섯살 때부터 피부질환을 앓았고, 지금까지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제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병마와 싸웠다. 전신 농포성 건선은 온몸의 피부에 열이 나서 빨갛게 붓고, 피부에 물집이 생겨 염증이 생기고, 그런 염증들이 엉겨 붙어 결국 살점이 떨어지기 때문에 온몸이 쓰라린 고통을 가져오는 질환이다. 나병과 비슷한 피부질환 특성상 외부의 활동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이 많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신 농포성 건선은 건선 중 유병률 1%에도 미치지 않는 희귀 건선으로 알려져 있다. 고름이 동반된 물집이 전신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이 질환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멀쩡히 잘 다니는 회사를 그만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20대 초반 대기업에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정직원으로 채용이 됐는데, 승진을 앞두고 질환이 재발했다.

그리고 병가를 쓰는 바람에 승진 대상자에서 누락 되고, 결국 길어진 입원 기간 때문에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서 몇 달씩 병가를 내는 직원을 반길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적당한 치료제가 없이 스테로이드에 의존하고 있고, 한번 발병하면 심하게는 몇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이고, 건선 환자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질환임에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희귀질환 지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저 같은 건선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사회의 편견 없이 당당하게 일원으로 나가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헬스동아#건강#의학#희귀질환자#유전성혈관부종#제1형 당뇨병#전신 농포성 건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