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밟아 심신 재충전…“제2의 인생 원동력 됐죠”[김종석의 굿샷 라이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1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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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학 원조 서경묵 교수 자전거 예찬
갱년기 탈출…제2의 인생 원동력
심혈관계 질환 예방, 다이어트 효과 만점
안전제일…교통수칙 등 조기교육 필수

서경묵 중앙대병원 명예교수(65)는 50세 때 자전거 타기의 매력에 빠져든 뒤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지난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달린 서 명예교수. 서경묵 교수 제공
서경묵 중앙대병원 명예교수(65)는 50세 때 자전거 타기의 매력에 빠져든 뒤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지난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달린 서 명예교수. 서경묵 교수 제공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청명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자전거 타기는 혈압, 혈당, 체지방량을 감소시켜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증을 조절하고 예방할 수 있다. 자전거를 1시간 탔을 때 소비되는 칼로리 양은 400¤700kcal 정도로 걷기의 4배에 이르러 체중 감소 효과도 크다.

국내에 골프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서경묵 중앙대병원 명예교수가 은퇴를 앞두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돌았다. 서경묵 교수 제공
국내에 골프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서경묵 중앙대병원 명예교수가 은퇴를 앞두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돌았다. 서경묵 교수 제공
● 페달링은 허벅지 힘…무릎 안 좋은 노년층도 적합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경묵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명예교수(65)는 15년 넘게 혼자 또는 모교 서울 중앙고 모임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저녁이면 1시간 반 동안 용산과 마포를 오가는 40km 한강 코스를 탄다. 주말에는 춘천 등 교외로 나가 70km를 달린다. 서 교수는 “서너 시간 라이딩을 하면 하체 지구력이 생긴다. 페달링은 허벅지 힘으로 하게 돼 무릎이 안 좋은 노년층에게도 좋고 심폐기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정년퇴임을 한 서 명예교수는 2000년대 초반 국내 최초로 골프의학을 도입한 ‘그린 닥터’로 이름을 날렸다. 골프의학회 창립 후 회장을 맡았던 그는 11월부터 서울 부민병원 스포츠재활센터장에 부임할 계획. 30년 직장생활을 마친 뒤 새로운 의욕을 보이는 원천도 바로 자전거다.

서 명예교수는 50대 들어 심각한 갱년기를 겪었지만 자전거가 보약이 됐다. “빨리 피곤해지고 근력도 떨어지더라고요. 짜증이 늘고요. 마침 붐이 일어난 자전거를 타면서 몸과 마음에 다시 에너지를 얻었죠. 성취감도 느끼고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완주한 서경묵 중앙대병원 명예교수. 서경묵 교수 제공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완주한 서경묵 중앙대병원 명예교수. 서경묵 교수 제공


● 산티아고 800km 순례…‘항상 겸손하라’
지난달 정년퇴임을 앞두고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자전거로 달렸다. 서 명예교수는 “가족들이 그동안 고생했다며 여행 경비를 선물로 주더라. 하루 평균 80km를 탔다.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시간이 됐다”며 말했다. 그는 또 “순례길을 달리면서 허벅지는 터질 것 같고 숨이 헐떡거려 입 주위에 흰 거품을 물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항상 겸손하라’는 말이 떠올라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어느새 자전거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게 된 서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안전을 강조했다. “타이어 두께가 얇은 로드바이크는 시속 40km까지 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한강공원에서 20km 제한 속도를 넘기면 대단히 위험해요. 급브레이크 사고에 따른 경추골절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도 여럿 봤어요.”

평소 스포츠재활에 관심이 많은 서 명예교수는 대한스포츠의학회 이사장, 대한체육회 의무위원회 부위원장, 대한골프협회 선수강화위원, 대한스키협회 의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앞으로 프로골퍼 치료와 재활에도 헌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옷 맞추듯 자전거도 피팅해야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으로 휠라 앰배서더인 공효석은 어릴 적부터 헬멧 착용, 수신호 등 자전거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효석 인스타그램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으로 휠라 앰배서더인 공효석은 어릴 적부터 헬멧 착용, 수신호 등 자전거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효석 인스타그램
전 사이클 국가대표인 휠라(FILA) 앰배서더인 공효석은 “자전거는 어느 스포츠보다 레슨(교육)이 필요하다. 오르막 내리막 커브 등 다양한 지형에서 타는 만큼 위험도 많이 있다. 기어 사용도 적절히 해야 하며 에너지 소모가 많은 운동이므로 라이딩할 때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펜싱 스타 남현희의 남편인 한 공효석은 또 “어려서부터 헬멧 필수 착용, 교통신호 준수, 배려운전, 수신호 등을 잘 배워야 한다. 필수교육도 바람직하다”며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듯 자전거도 자신의 사이즈에 잘 맞게 피팅을 받아야 올바른 자세로 편하게 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 양천구청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안전교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서울 양천구청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안전교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스포츠안전재단에 따르면 2019년 보고된 자전거 행사 사고 495건 가운데 미끄러져 넘어져 발생한 사례가 160건(31.5%)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자전거, 자동차와 충돌이 109건(22.0%)이다. 사고 연령대는 40~49세가 164건(33.1%)으로 최다.

기본적으로 자전거에 오르기에 앞서 브레이크,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시속 16km 정도로 30분간 라이딩한 후 10분은 쉬면서 허리, 손목 스트레칭을 해주는 게 좋다는 게 전문가 얘기다.

올림픽 양궁 2관왕 출신 며느리 장혜진, 부인과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선 서경묵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명예교수. 서경묵 교수 제공
올림픽 양궁 2관왕 출신 며느리 장혜진, 부인과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선 서경묵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명예교수. 서경묵 교수 제공


● 언젠가 양궁 여왕 며느리 장혜진과 가족 동반 라이딩
서 명예교수는 스포츠 가족이기도 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양궁에서 금메달 2개를 딴 ‘신궁’ 장혜진이 그의 며느리다. 대한체육회 의무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아들의 신붓감으로 장혜진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10월 출산 예정인 장혜진도 시아버지보다 며칠 앞서 지난달 25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서 명예교수는 “나중에 아들, 며느리 뿐 아니라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며 웃었다.

꽃길을 따라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밝고 있는 동호인. 동아일보 자료사진
꽃길을 따라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밝고 있는 동호인. 동아일보 자료사진
작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32세 때 처음 배운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보부아르가 계약결혼을 한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생의 새로운 기쁨을 찾았어요. 이제부터 내 소망은 자동차가 아니라 내 자전거를 한 대 갖는 것뿐이에요.” 보부아르는 소설 ‘타인의 피’에서 “저 아름다운 노란색 안장에 앉아 두 손으로 핸들을 잡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거야”라고 자전거를 묘사하기도 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힘차게 페달을 밟아보시라. ‘따릉이’(서울) ‘타슈’(대전) ‘누비자’(창원), ‘타랑께’(광주) 같은 공공자전거면 어떠랴. 축복, 기쁨, 천국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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