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만든 최고급 한우… 식탁에서 언제 맛볼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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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두께 인공고기 제조

9일 오전 경기 수원시 광교비즈니스센터에 입주한 생명공학 벤처기업 씨위드. 사무실 내부는 여느 생명공학 실험실 같았다. 한편엔 시약 보관 냉장고가 놓여 있고, 클린벤치(무균실험대) 앞에서는 연구원이 실험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사무실 앞 현판에는 ‘FARM(농장)’이라는 글자가 선명해 눈길을 끌었다. 조성천 씨위드 개발본부장은 “이곳에선 세포를 배양해 사람이 먹는 고기를 만든다”며 “가축 대신 세포를 키우는 ‘농장’인 셈”이라고 말했다.

○유전자로 ‘우량 세포’ 골라… 해조류 추출 지지체 사용

씨위드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뉴바이올로지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인 금준호, 이희재 씨가 공동대표로 지난해 3월 창업한 학생창업기업이다. ‘한우 세포를 키워 한우 스테이크를 만든다’는 목표로 설립했다. 금 대표는 “한우의 근육세포를 배양해 두께 1cm 수준의 두툼한 스테이크용 고기로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르면 내년 4월 시식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본 재료는 한우의 근육세포다. 씨위드는 소의 유전체 정보를 토대로 ‘우량 세포’를 고른다. 소의 유전체 용량은 염기쌍 30억 개에 이르는 약 3Gb(기가비트)로 2만2000여 개의 유전자로 이뤄졌다. 미 국립보건원(NIH)과 농무부는 ‘소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해 2009년 가축 중에선 처음으로 헤리퍼드 품종의 소 유전체를 완전히 해독해 공개했다. 우리 농촌진흥청은 이를 토대로 국립농업생명공학정보센터(NABIC)를 구축해 두 종류의 소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양육 스타트업인 씨위드의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한우의 근육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금준호(왼쪽), 이희재 공동대표. 씨위드·DGIST 제공
배양육 스타트업인 씨위드의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한우의 근육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금준호(왼쪽), 이희재 공동대표. 씨위드·DGIST 제공
금 대표는 “송아지에서 채취한 검체에서 마블링 관련 대사 유전자가 얼마나 발현되는지 확인해 향후 마블링의 양을 예상하는 기법은 이미 쓰이고 있다”며 “세포 수준에서 유전자를 이용해 형질이 우수한 세포를 추리면 상용화 단계에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DGIST에서 기초 연구를 수행하면 광교에선 실제로 고기를 만드는 식으로 업무를 분담한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웰에이징연구센터에서 노화 관련 근육 연구를 한 조성천 본부장이 올해 2월 개발 책임자로 합류하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그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약품 복제약)도 개발했다.

조 본부장은 “세포 하나의 무게는 3∼4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이어서 10g 정도의 배양육으로 키우려면 세포가 10억 개가량 필요하다”며 “그래서 세포를 3차원으로 키우는 스캐펄드(세포가 자라는 구조물)가 필요한데 우리는 해조류에서 추출한 천연 물질을 사용하고 있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배양육 개발에 뛰어든 스타트업으로는 씨위드 외에 다나그린, 셀미트 등이 있다. 다나그린은 혈청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심장, 간 등 조직세포가 잘 자라는 스캐펄드를 제작하는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셀미트는 소나 돼지의 줄기세포를 키우는 기술에 특화됐다.

씨위드는 첨단 기술 창업지원 전문기업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로부터 지난해 5000만 원의 투자 유치를 받았고, 올해 5억 원을 추가로 유치했다. 지난달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기술주도 창업지원 사업인 ‘팁스’(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프로그램)에 최종 선정돼 5억 원을 지원받았다. 조 본부장은 “배양육은 세포를 직접 키운다는 점에서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대체육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가금류에 퍼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서도 자유롭다”고 말했다.

씨위드는 2023년 첫 제품을 출시하고, 이후 배양육 100g당 2000원 선까지 가격을 낮추겠다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 금 대표는 “2025년 이전에 미국, 유럽 등 배양육 시장이 큰 해외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험실 닭고기’ 첫 판매 승인… 우주 식량도 넘봐

세계 배양육 시장에서 가장 앞선 기업은 미국의 잇저스트다. 이달 2일 실험실에서 만든 잇저스트의 닭고기가 싱가포르 식품청의 판매 승인을 얻었다. 도축된 고기가 아닌 실험실에서 키운 배양육이 판매 승인을 받은 것은 세계 최초다. 2011년 식물성 단백질로 계란, 마요네즈 등을 만들며 대체육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잇저스트는 2016년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고, 2017년 배양육으로 기술을 확장해 가장 먼저 상용화에 성공했다.

빌 게이츠가 2017년 170억 달러(약 18조4300억 원)를 투자해 화제가 된 멤피스미트는 동물의 자기복제 세포를 배양해 단백질로 된 인공 고기를 만든다. 멤피스미트는 올해 1월 배양육 생산 공장 건설 계획을 밝히며 배양육 시판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멤피스미트는 2022년 배양육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2018년 12월 세계 최초로 세포로 만든 스테이크를 공개한 이스라엘의 알레프팜스는 배양육으로 우주 식량까지 넘보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3차원(3D) 바이오프린터를 이용해 세포를 작은 근육 조직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올해 10월에는 ‘알레프 제로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달이나 화성에 세포로 배양육을 생산하는 ‘우주 바이오팜’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한우#인공고기#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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