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구 ‘원석’에 KIST 기술 접목해 ‘황금’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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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극지연구소 첫 공동연구… 기초연구 넘어 유용한 기술 개발
체온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 등… 4개 과제 내달부터 연구 나서
“극지 연구 패러다임 바뀔 것”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의 항공사진. 중앙에 세 갈래로 뻗은 건물이 본관이다.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의 항공사진. 중앙에 세 갈래로 뻗은 건물이 본관이다.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 해면은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극저온 환경에서 약 1만5000년이나 생존한 해면도 학계에 보고됐다. 다세포 동물 중 가장 하등 동물로 알려진 해면 중 남극에 서식하는 남극 해면은 세계 5대 장수 생물 중 하나다.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장수하는 개체는 극지에 사는 그린란드 상어로 알려져 있다. 평균 수명은 272년이며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결과 500세로 추정되는 개체가 2006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됐다.

극지 생물은 이처럼 느린 대사 속도로 성장 속도가 더디게 진화했지만 수명이 길다. 이들의 진화와 극지 환경 적응 메커니즘을 규명하면 인간의 노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인간 노화 연구에 극지 해양생물의 진화 메커니즘을 적용하려면 극지 해양생물의 분자생리학적 특성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극지 연구는 극지를 연구하기 위한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거나 극지 생물 유전체 분석 등 기초연구에 그쳤다.

21일 관련기관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기존 극지연구의 한계를 넘어서고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공동연구를 추진한다. 극지연구를 극한 응용기술에 접목해 산업이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창의적인 연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우주나 천문, 국방 등에서 개발한 극한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극지연구소와 협력한 경우는 있었지만 국내 유일 종합연구소인 KIST와 극지연구소가 전방위적으로 극한기술 연구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공동연구는 지난해 남극 세종과학기지 30주년과 올해 2월 12일 장보고과학기지 5주년을 맞아 그간 쌓아온 역량을 극지연구에만 국한하지 않고 확대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KIST와 극지연구소는 1월 말 4개의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기관 고유 사업으로 예산을 투입해 내달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다. 극지생물의 분자생리학적 특성과 노화 연구는 최만호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 책임연구원팀과 강승현 극지유전체사업단 연구원팀이 맡는다. 이들의 연구주제는 ‘체온이 노화와 장수에 미치는 영향’이다. 체온에 따라 달라지는 생리학적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노화를 조절, 억제하는 원리를 알아낸다는 게 목표다.

최만호 KIST 책임연구원은 “저체온과 수명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아직 초기 단계”라며 “극지생물의 유전자원을 확보한 극지연구소와 생체 내 호르몬 분석 역량을 갖춘 KIST 연구진이 결합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 우주정거장 건설에 활용하는 것을 타진 중인 로봇 기술을 보유한 이우섭 KIST 선임연구원과 정창현 극지연구소 선임기술원은 극지 연구에 활용할 소형 육상 로봇 개발에 나선다. 이들은 지형 변화가 심하고 균열이 많은 극지에서 과학 연구가 가능한 10kg 미만급 휴대용 극지 과학임무 로봇을 개발한다. 이 밖에 판철호 KIST 천연물인포매틱스연구센터 책임연구원과 김상희 극지연구소 극지생명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은 ‘극지 미세조류 유래 유용물질 탐색 및 대량배양’ 연구로 극지 미세조류로부터 유용한 물질을 찾아내는 연구를, 김은주 KIST 물자원순환연구센터 선임연구원과 강정호 극지연구소 박사는 최근 전 지구적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플라스틱의 해양순환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미세플라스틱의 수권 및 빙권 거동 기초연구’에 나선다.

이병권 KIST 원장은 “지금까지 남극 연구는 남극에서 연구를 하기 위한 인프라 연구에 집중됐는데 이번 KIST와의 공동연구로 극지 연구의 틀이 바뀔 것”이라며 “발상의 전환과 기존의 구조를 바꿔 창의적·도전적 연구를 강조하는 최근 트렌드 속에서 연구개발(R&D) 혁신의 모범 사례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kist#극지연구소 첫 공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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