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동아]지킬박사와 하이드… 스테로이드의 양면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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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가 됐다. 폐렴에 걸려 수없이 죽어가던 사람들이 주사 한방에 언제 아팠냐는 듯 살아나는 기적을 보면서 약은 전지전능한 것이고 몸에 이익을 주는 것으로 추앙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죽고 사는 의학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의학으로 축의 변화가 시작됐다. 폐렴과 같은 감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발전된 환경은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요소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주었다. 이때부터 암, 고혈압, 당뇨, 치매, 동맥경화와 같은 다양한 퇴행성 질환들이 전염병을 대신해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생명을 위협하게 됐다. 생명에 직접적 영향은 없지만 삶의 질을 현저하게 저하시키는 만성통증, 즉 퇴행성 척추, 관절 질환과 같은 문제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요한 질병이 됐으며 사람들은 또다시 페니실린과 같은 신비한 약을 찾게 됐다. 그것이 스테로이드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현대의학의 가장 큰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세 번에 걸친 척추 수술로 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였지만 몇 알의 스테로이드가 남 앞에 나설 때 그를 건강한 모습으로 보이도록 도와줬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그의 얼굴은 부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총알은 케네디의 뇌를 빗나갔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 결국 그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피가 멈추지 않는 것은 스테로이드의 많은 부작용 중 하나이다.

1970년 이후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던 스테로이드에 과학자들은 하나둘씩 의심을 가지게 됐다. 스테로이드는 호르몬대사를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 관절과 힘줄을 약하게 하며 신경과 혈관에 손상을 준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스테로이드의 양면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오늘에 와서 스테로이드는 적어도 만성통증 분야(류머티스 질환과 같은 면역성 질환은 제외)에서는 병의 결과에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히려 빠른 퇴화를 부추기기도 한다.

염증이 발생하면 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로 염증을 없애면 재생이 되지 않는다. 염증은 손상된 부위를 정상으로 회복해 유지하려는 생체의 정상적인 방어기전으로 질병과 싸울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스테로이드는 방어기전인 염증을 강제로 없애버린다. 염증이 없어지면 당장은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끊임없이 재생돼야 하는 몸의 일부분이 재생을 멈춤으로써 결국 나이보다 일찍 퇴화하는 모순을 가지게 된다.

나는 대학교수 시절 ‘사람의 모든 병을 약으로 치료하겠다’는 일반적인 생각이 현대의학을 점점 더 어려움에 빠뜨리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15년 전부터 스테로이드의 사용량을 점진적으로 줄였다. 또 장기간 복용하면 치매와 같은 신경계의 변화와 퇴화를 유발하는 약물을 가능한 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스테로이드를 안 쓰고도 환자의 만족도를 끌어올리게 됐다. 최근 들어서 스테로이드를 쓰는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도 있기 힘들다.

항생제는 인류에 큰 선물이지만 스테로이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의 달콤함에 취해 퇴화를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안강 안강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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