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안전장치 풀린 환자용 식품 오히려 환자건강 위협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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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밥이 보약’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사가 어렵거나 특별한 영양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환자들에게는 흔히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공급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특별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영양소가 독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은 신부전 환자가 칼륨을 과다 섭취하면 심장에 부정맥을 유발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반대로 균형 잡힌 영양섭취가 어려워 병의 회복이 늦어진다거나 의학적인 치료는 잘됐는데 영양 악화나 영양실조로 병을 이겨 내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위암, 식도암 등 소화기계 암 사망자 5명 중 1명은 영양 상태 불량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적절한 영양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식사의 전부나 일부를 대체하기 위해 제조·가공된 식품이 바로 환자용 식품이다. 환자의 빠르고 안전한 회복을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를 통해 환자용 식품(특수의료용도 등 식품) 섭취 대상자의 질환 및 특성에 따라 유형별 제조 기준과 규격을 두고 있다.

 그런데 8월 식약처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개정안을 통해 당뇨병, 신장 질환, 장 질환자용 식품을 비롯해 5개 식품 유형을 환자용 식품으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환자식 개발’을 위한다는 식약처의 규제 완화는 언뜻 다양한 환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대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된 환자용 식품의 영양성분 기준 규격은 대부분이 ‘표시량 이상’이다. 생산업체가 규정한 표시량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영양성분은 일괄적으로 ‘얼마 이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얼마 이하’를 유지해야 하고, 또 어떤 것은 ‘얼마 이상 얼마 이하’처럼 범위가 정해진 경우도 있다. ‘얼마 이상’일 경우 과량 섭취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영양성분들의 분율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발표된 ‘식품 등의 표시 기준 일부 개정 고시(안)’에서는 기존에 금지됐던 환자용 영양식품의 ‘질병명 표기’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시 시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 같은 기준이 현장에 그대로 적용된다면 일선 의료진, 임상 영양사, 환자들은 업체의 ‘질병명 표기’와 영양 기준에 따라 환자용 식품을 선택해야 한다. 환자 회복 요건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양 섭취의 문제는 환자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후죽순처럼 생산된 제품들이 과연 신뢰할 만한 수준인지 의문스럽다. 또 환자용 영양식품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일반 가공식품들이 환자용 식품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환자용 식품을 필요한 환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적용되기에 앞서 보완책이 필요하다. 다양한 질환용 식품 개발의 필요성을 충족한 식품공전 개정안 취지를 살리면서, 일선 병원과 환자의 구매단계에서 혼선이 없도록 질환별 제조 기준 및 규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식약처는 지금이라도 환자용 식품의 유용성과 안전성 마련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규제 완화만이 능사가 아니다. 효율적인 정책 운용을 위한 규제 정비는 필요하지만, 환자용 식품은 제조하는 처음 단계부터 환자의 식탁에 올라가는 마지막 단계까지 모든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제조 기준 완화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업체에 대한 행정 조치 등 정부의 추가 대책 마련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기 때문에 우수한 품질의 안전한 환자용 식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때다.

김규남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환자용식품#건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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