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비행 처음이야” NASA 연구용 비행기 탔더니 ‘울렁울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8일 1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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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약 챙겨 드셨나요. 항공기가 지표면 가까이 낮게 나는 데다 빙글빙글 돌면서 오르내리는 코스도 있어서 심하게 흔들릴 거예요.”

7일 새벽 5시 대한민국 공군작전사령부인 경기도 평택의 오산공군기지에서 만난 민경은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공학부 교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한미 협력 대기 질 연구(KORUS-AQ)’를 위해 지난달 27일 한국에 들어온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DC-8’에 기자가 직접 타 봤다. KORUS-AQ는 NASA가 다른 국가 연구진과는 처음으로 협력해 진행하는 대기 질 연구 프로젝트로 2일부터 6주간 조사한다.

오산공군기지에선 비행 준비가 한창이었다. 과학자들과 파일럿은 지난 관측 결과를 토대로 세운 비행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기술자들은 항공기와 관측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전국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이라는 소식을 듣고 “오늘 제대로 오염물질을 관측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전 6시 반, 비행에 대한 브리핑과 안전교육을 마치고 기자는 연구진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8시경 이륙한 DC-8은 일반 여객기의 비행과 완전히 달랐다. 수시로 파도를 타듯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가기를 반복했고, 비행기가 기운 채로 나선형으로 뱅뱅 돌면서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도 했다.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200여 가지와 에어로졸, 오존, 황사,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의 수직 분포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일산화탄소 같은 기체 성분이 직선으로만 움직이진 않잖아요. 연구용 항공기는 다양한 위치와 고도에서 시간별로 어떻게 대기 성분이 달라지는지 조사하는 게 목적이라 어쩔 수 없어요.” (박정후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 환경연구관)

잠시 후 비행기가 다시 아래를 향해 기울더니 눈앞에 잠실 제2롯데타워가 눈앞에 보였다. 발 아래로 아파트와 빌딩이 가득했다. DC-8은 지표면과 해수면을 각각 300m, 150m 위에서 날았다. 사람들이 숨을 쉬는 지표면의 공기와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정확한 오염원과 대기오염물질의 흐름을 알 수 있어 저공 비행했다.

비행기는 지상관측소가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과 경기 여주 태화산 대기관측소 상공을 거쳐 북서풍을 따라 부산을 향했다. 부산 앞바다에서는 먼 바다를 빙 돌아 포항을 거쳐 다시 서울과 오산공군기지로 돌아왔다. 이 항로를 4번이나 반복하며 꼬박 8시간을 비행했다.

이번 공동 조사의 총괄책임자인 제임스 크로포드 NASA 랭글리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서울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이 북서풍을 따라 남한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태양 빛의 방향과 양, 온도, 반응 물질에 따라 어떻게 성분이 바뀌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덜컹덜컹 흔들리는 기내에서 과학자들과 조종사들이 챙겨 온 도시락을 꺼냈다. 태어나 처음 이런 비행을 해보는 기자는 구토 증상에 도저히 가방에서 음식을 꺼낼 수 없었다.

연구진은 비행기 안에서 관측 장비의 모니터를 체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기자와 파일럿, 과학자를 포함한 탑승객 43명은 비행 중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데이터를 보고 헤드폰과 채팅방을 통해 의견을 나눴다. 파일럿에게 이 정보를 전달해 고도를 조절하기도 했다.

부산과 포항 앞바다를 날던 중이었다. “대기오염원이 전혀 없는 해상에서 갑자기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 수치가 매우 높게 나타난 게 흥미롭다. 방금 지난 지점은 다음 비행 때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는 크로포드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 다른 연구원이 “해변 지역의 선박에서 배출된 물질 같다”며 의견을 나눴다.

비행기에 탑재된 측정 장비 대부분은 공기 중에 있는 입자의 질량, 흡광(吸光)량 등을 측정해 성분을 알아내는 기기다. 26개 장비가 각각 측정물질과 측정원리가 달라 상호 보완할 수 있다. 이번에 실린 한국 장비 6개 중 하나인 GIST의 ‘K-ACES’는 세계에 단 2대밖에 없는 장비로 DC-8에는 처음 실렸다.

이번 한미 공동 연구는 대기질 예보 개선과 대기환경 관련 정책 결정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크로포드 연구원은 “대기오염을 효율적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런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조사와 연구가 선행돼야만 정책 결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부산=송경은 동아사이언스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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