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신약 건보적용에 日→88일, 獨→100일, 韓→633일 걸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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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건강보험 지원 갈길 멀다

진행성 위암으로 투병 중인 이주원 씨(43)는 최근 빌라에서 반지하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이 치료비를 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항암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이 씨는 비슷한 이유로 다섯 살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도 그만두게 했다. 이 씨는 “정부가 4대 중증질환(암, 심혈관,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보장성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그런 얘기는 나한테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한숨지었다.

위암은 치료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 덩어리만 찾아가 파괴하는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생존율이 더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전이가 됐거나 국소진행성 위암, 재발한 암 등 2차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다르다. 5년 생존율이 20%대 이하로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고가 항암제 비용 고통 여전

하지만 최근 2차 치료에도 표적치료제가 도입되면서 사망위험도를 낮출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문제는 이 약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약값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국내 진행성 위암 환자들도 글로벌 기준에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치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항암제 건강보험 지원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12개 항암 신약에 대해 건강보험 지원이 시작되는 등 암 환자의 부담이 조금씩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암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이 총 8350억 원가량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보험 지원이 늦어지면서 고가의 항암제 비용을 떠안는 환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7년 이후 허가한 항암 신약 중 아직 37개는 여전히 건강보험이 지원되지 않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이 지원되는 약보다 적용되지 않는 약이 더 많은 상황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암제의 상당수는 대체 불가능한 치료제다.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위해서는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항암제의 약 30%(11개)는 수술적 치료가 어려운 혈액암용 치료제다.

4대 중증질환 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호스피스 병동을 걷고 있는 말기 암 환자. 동아일보DB
4대 중증질환 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호스피스 병동을 걷고 있는 말기 암 환자. 동아일보DB
○ 항암제 도입 속도 OECD의 1.5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국내 항암제 도입 속도는 상당히 늦다. OECD 주요 20개국의 신약 개발 이후 건강보험 지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83일이지만 국내는 약 633일이나 걸린다. 일본(88일), 독일(100일), 미국(180일) 등과의 차이는 더욱 크다.

정부가 약가 인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빠른 신약 도입의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해도 정부와의 약가 협상에서 적정 가격을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도입을 꺼린다는 것. OECD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에 출시된 의약품의 가격은 OECD 평균의 44% 수준이다.

정현철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를 위해 항암제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해 제약사들이 국내 공급을 꺼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비교 대상이 없는 신약까지 경제성 평가를 너무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항암제 신약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체 건강보험 재정에서 항암제에 지원되는 비율은 약 1.5%인데 전체 사망 원인 1위인 암 환자 수를 고려하면 너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백민환 다발골수종환우회장은 “산정특례를 인정받는 암 환자들은 어차피 약값의 5%만 부담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금보다 적정 가격에 약을 도입해도 부담이 적은 편”이라며 “정부가 약값을 후려쳐서 싸게만 도입하려고 하기보다는 진짜 시급한 약을 빨리 들여오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항암신약#건강보험#항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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