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의술]무너진 코 세우려 한국 온 말레이시아 왕자… 실리콘 보형물 대신 갈비연골 떼내 코 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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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률 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012년 2월, 45세의 말레이시아 텡 압둘라 왕자가 진홍률 서울 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를 찾아왔다. 코가 휘어서 축농증 만성비염 등 기능상 문제를 겪던 그는 말레이시아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은 뒤 코가 아예 주저앉아 버렸다. 코는 뾰족한 삼각형 모양이 아니라 말안장처럼 아래로 오목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무너진 코를 세우기 위해 호주와 미국 등 코 재건 분야 전문가들을 두고 비교한 끝에 진 교수를 찾은 것이다.

진 교수는 우리나라 코 재건성형 분야의 권위자. 한 해 60∼70명의 환자가 코 재건 수술을 받기 위해 진 교수를 찾는다. 코 재건술을 받는 목적은 다양하다. 말레이시아 왕자처럼 코골이, 비염 등 수술을 하기 위해 코뼈를 건드렸다 의료사고가 나는 바람에 재건술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성형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진홍률 서울 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미국, 호주 유수의 병원을 제치고 한국에서 수술을 받은 압둘라 말레이시아 왕자와의 만남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진 교수가 코의 구조도를 가리키며 압둘라 왕자의 수술 부위를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진홍률 서울 보라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미국, 호주 유수의 병원을 제치고 한국에서 수술을 받은 압둘라 말레이시아 왕자와의 만남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진 교수가 코의 구조도를 가리키며 압둘라 왕자의 수술 부위를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무너진 코 세우기 위해 갈비연골을 떼다

“돈 걱정은 마시고, 가장 최신술로 해 주세요.”

말레이시아 압둘라 왕자가 수술을 받으러 오자 병원이 시끌벅적해졌다. 인천공항에 내린 압둘라 왕자는 말레이시아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앞뒤, 양옆으로 사이드카를 대동한 채 병원에 도착했다. 그를 따라온 수행비서만 30명. 왕자는 자신의 1인용 입원실 외에도 4개의 방을 더 빌려 수행원이 합숙하게 했다. 병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왕자의 코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비중격’ 부위다. 이는 코 안쪽을 이루는 구조물 중 하나로, 코끝과 콧등을 지지해 미용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폐로 유입되는 공기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고 독성물질과 감염원을 제거하는 기능도 한다.

압둘라 왕자의 ‘비중격 재건’을 위해 보형물로 무엇을 사용할지부터 결정해야 했다. 많은 성형외과 의사들은 코를 세울 때 실리콘을 활용한다. 하지만 코의 피부조직과 구조에 따라 실리콘 사용이 독(毒)이 되는 경우도 있다. 피부 타입과 맞지 않으면 수술 부위가 곪아버리는 경우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진 교수는 압둘라 왕자의 몸에서 떼어낸 연골을 보형물로 활용하기로 했다. 본인 신체에서 채취한 보형물을 활용하는 것이 인공적인 보형물을 사용하는 것보다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왕자의 갈비 부위에 달려 있는 연골을 떼어내는 수술을 감행했다.

칼로 배 부위를 째고, 연골을 떼어내 깎는 과정은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진 교수는 “이 과정이 코를 세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연골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피부를 3∼4cm 절개해야 하지만, 진 교수는 흉터를 적게 남기기 위해 1.5cm만 절개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갈비뼈와 붙어 있는 폐를 다치게 할 수도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연골을 떼어내면 연필을 깎듯 코 모양에 맞춰 다듬어야 한다. 한 번 깎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이를 식염수에 담가 놓아 모양이 잡히는 것을 관찰하면서 두세 번 깎아내야 보형물이 완성된다. 코 안쪽을 절개해 보형물을 심고 봉합까지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이렇게 해서 말레이시아 왕자의 코가 똑바로 서게 됐다.

압둘라 말레이시아 왕자(왼쪽)와 진홍률 교수. 서울 보라매병원 제공
압둘라 말레이시아 왕자(왼쪽)와 진홍률 교수. 서울 보라매병원 제공
○ ‘코 성형’의 원칙: 코를 안 보이게 하는 것

진 교수가 이 수술을 ‘내 생애 최고의 수술’로 꼽은 것은 수술의 난도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진 사람도 코가 망가지면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한 나라의 왕자가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까지 와서 수술을 받고 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진 교수는 압둘라 왕자의 코 재건술을 설명하며 한국의 ‘코 성형’ 문화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서양인의 코를 모델로 과도하게 코를 세우는 ‘갈 데까지 가보자’ 식의 코 성형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코에 관한 잘못된 상식들은 과도한 성형을 부르기 십상이다. 가령, 얼굴이 넓적한 사람들은 코를 높게 세우면 얼굴이 갸름해 보인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진 교수는 “넓적한 얼굴형에 코만 가늘고 오뚝해 보이면 여백이 더 많아 보여 얼굴 크기가 더 커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매부리코를 교정하기 위해 코뼈를 깎는 것도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필러 주입을 통해 콧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진 교수는 ‘어떤 코가 아름다운 것인가’라는 질문에 “코 성형의 원칙은 ‘코를 시야에서 안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굴의 중심에서 과도하게 이목을 끄는 것보다는 눈, 입, 얼굴형 등 다른 곳을 부각시켜 주며 배경으로 존재할 때 ‘아름다운 코’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말레이시아 왕자#진홍률#보라매병원#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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