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홍길 IBS단장 “과학도 대중의 언어로 사회와 소통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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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노화 연구로 호암상 받은 남홍길 IBS단장

“과학을 잘한다는 건 문제를 잘 푸는 것으로 한정할 수 없습니다.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에서 과학자 스스로가 성장하고 자신이 찾은 해법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남홍길 기초과학연구원(IBS) 식물노화수명연구단장(57·사진)을 만났다. 그는 식물의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밝혀 과학 연구에 새로운 영역을 일궈냈다는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호암상 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30일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

남 단장의 오랜 궁금증은 생명체가 어떻게 늙고 죽음에 이르는가에 향해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사람이나 동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는 지구상의 생명체에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는 식물에 주목했다.

“가을에 낙엽이 지고 들풀이 메말라 가는 장면을 보면서 그 속에 담긴 원리를 과학적으로 풀고 싶었습니다. 식물이 죽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거든요.”

그는 세계 3대 과학저널인 ‘사이언스’ ‘셀’ ‘네이처’에 모두 논문을 싣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데만 전념하는 과학계의 문화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성과를 얼마나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느냐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까요. 과학은 그들만의 상아탑을 벗어나 사회와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그는 국내 최초로 누구나 논문을 볼 수 있도록 한 온라인 과학저널 ‘IBC’를 2009년 창간했다. 1996년에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를 세워 생물학 정보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에게 토론의 장을 열어줬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곳도 브릭이었다.

“문화뿐 아니라 과학의 언어도 바뀌어야 해요. 과학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식물의 일종인 애기장대를 연구하다 수명이 긴 돌연변이종을 발견하고는 ‘오래사라(Oresara)’라는 이름을 붙여 학계에 발표했다. 식물이 빛에 반응하는 유전자를 발견하고는 ‘빛(bit)’이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

정상의 자리에 섰지만 정체되는 것을 우려해 남 단장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년 넘게 몸담았던 포스텍을 떠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뉴바이올로지’라는 전공을 개설한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생명의 문제를 풀기 위해 물리, 화학, 컴퓨터를 전공한 교수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제 우리만의 과학을 펼쳐야 할 때가 됐습니다. 전공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주어진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죠. 이렇게 얻은 성과를 사회와 공유할 때 과학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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