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일괄 인하 1년… 논란 여전히 팽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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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약값부담 덜어” “수익 줄어 투자 엄두못내”

《 “국민의 약값 부담은 줄었다. 국내 제약 산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미지수다.” 지난달로 시행 1년을 넘긴 정부의 ‘약가 일괄 인하’ 정책 성적표다. 이 정책은 정부가 △약품에 지출되는 돈을 줄여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고 △제약사 접대비용을 줄이고 연구개발(R&D) 비중을 늘리기 위해 추진됐다. 당시 정부는 복제약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 신약 개발을 유도한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2020년에는 국내 제약 산업을 세계 7위 수준까지 키우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제약업계는 약가 인하 도입 전부터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고 비판했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

○ 약값, 평균 14% 떨어져

정부의 약가 인하 드라이브는 국민 부담을 상당 부분 줄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약가제도 개편 이후 약값은 평균 14% 떨어졌다. 당초 목표치인 17%보다는 낮지만, 국민이 직접 체감할 만한 수준임은 확실하다.

2000년 이후 줄곧 늘어났던 약품비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1년만 해도 전체 약품비는 그 전해보다 9%가량 늘었다. 지난해는 3.4% 줄어 12조7740억 원을 기록했다. 더불어 전체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낮아졌다. 2011년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6%)의 1.7배인 28.5%였다. 지난해에는 26.5%로 낮아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1년간 국민이 부담한 의료비만 5000억 원가량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 흑자 덕분에) 2013년 건보료 인상률을 1.3%로 최소화했다”고 평가했다.

약가 인하가 제약업계 경쟁력 강화의 신호탄이 될 거라는 정부의 1년 전 전망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정부는 약값을 내리면 리베이트와 같은 비용이 줄어드는 대신 R&D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현실은 이런 전망치와 거리가 멀다. 제약업계는 정부의 일괄적인 약가 규제가 오히려 신약 개발을 막는다고 비판한다. 당장 매출 감소로 살림살이가 옹색해지고, 그 결과 R&D에 투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

실제 지난해 국내 제약업계 상위 155개사의 매출 성장률은 0.49%였다. 최근 10년의 기록 중 최저치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1%, 21% 감소했다. 신약 R&D 투자액은 지난해(595억 원)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세계 11위 수준이었던 국내 제약 시장 규모도 지난해 13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 필수의약품 생산 기반도 위협


얼마 전에는 국내 한 제약사가 신약 개발을 주도했던 연구소장을 비롯해 핵심 인력을 해임해 충격을 줬다. A 제약사 간부는 “신약을 개발했는데 안 팔리면 기업 내부의 적으로 몰리고, 조금 잘 팔리면 정부가 약값을 깎으려 하는데, 누가 신약을 개발하겠는가”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약가 인하에 따른 충격이 주사기, 수액 등 국민 건강 유지에 필수적인 기본 의약품 생산 기반을 위협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필수의약품은 약가 인하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하지만 경영 상황이 악화된 제약사들이 수익이 안 나는 ‘필수의약품’ 생산 라인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필수의약품을 생산하는 B 제약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복제약을 판 이익으로 필수의약품 적자를 메웠다. 이제는 약가 인하로 수익이 줄면서 필수의약품 생산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상명하달식으로 약품 가격 통제를 하는 방식만으로는 제약 산업의 구조조정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가격 인하 정책을 제약업계의 군살 빼기를 유도하는 자극제로 쓰려면 좀더 세심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다국적기업인 B 제약회사 관계자는 “정부가 10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제약펀드를 조성해 R&D 지원 확대를 약속했지만, 실현까지는 멀고 먼 이야기다. 이런 상황이라면 급한 불부터 꺼야 미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유근형·이철호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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