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 리포트]암 재발-전이 공포보다 실패자 낙인이 더 고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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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인 암 환자에게 암의 전이(轉移)나 재발 사실을 알리는 일이 진료실에서 가장 힘들다. 암이 다른 장기로 퍼졌다는 사실보다 환자나 보호자의 반응이 더 안타까울 때가 많다. 환자가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혹은 보호자가 잘 간호하지 못해 상태가 악화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 역시 순식간에 ‘죄인’이 된다.

유방암만 하더라도 5년 생존율이 91.0%로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 말은 10%는 재발하거나 전이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90%의 가능성에만 주목하고 10% 가능성은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지워버린다. 환자는 투병을 시작하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전이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 찍어버리고 만다.

경쟁과 효율을 강조한 시스템은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만 개인의 행복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은 암 투병을 일종의 경쟁으로 인식하면서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을 적용한다. 5년 생존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승자와 재발, 전이로 경쟁에서 실패한 패자로 나눈다. 승자를 위한 왁자지껄한 잔치 분위기 속에서 패자인 재발, 전이 환자는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재도전을 통해 부활하고자 하는 희망마저 포기해버린다.

2008년 필자가 미국에서 연수하던 시절 우연히 전이성 유방암 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했다. 이제 막 전이 판정을 받은 환자부터 전이된 상태로 20년 가까이 치료를 받아온 환자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치료법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격려했다. 환자들이 이렇게 활기찰 수 있다는 사실이 필자에게는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때 한국으로 돌아가면 전이성 암 환자를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김지현 분당서울대병원 암병원 교수
김지현 분당서울대병원 암병원 교수
2009년부터 필자는 전이성 유방암 상담 모임을 열고 1년에 2차례씩 이들과 함께 야외 나들이를 나간다. 같이 숲을 거닐면서 전이된 암과 함께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해 대화한다. 그러면서 환자가 느끼는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모임에 오는 환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 암의 전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면서 증상과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며 질병의 진행을 막는 일이 중요한 치료임을 알리고자 한다.

아직까지 병원의 치료 시스템과 사회 인식 모두 전이성 암 환자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다. 모두 완치만을 목표로 달려가다 보니 발생하게 된 부작용이다. 한국에서도 전이성 암 환자가 스스로를 실패자로 인식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김지현 분당서울대병원 암병원 교수
#암 전이#암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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