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 “앗! 독성해초 출현… 보디가드 불러라” 망둑어 “내 원룸 위험… 주둥이로 즉각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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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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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계 속 공생관계 속속 밝혀져… 특정 화학물질 신호로 상호생존 유지

어린 망둑어류 물고기가 아크로포라 산호 위에 나타났다. 이 물고기들은 평생을 똑같은 산호 틈에서 보내며, 독성 해초로부터 산호를 지킨다. 산호는 주변에 독성 해초가 나타나면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 ‘보디가드 물고기’를 부르고, 이 물고기는 해초류를 깎아버린다. 산호는 경호를 받고, 물고기는 경호의 대가로 서식지와 먹이를 얻는다. 사이언스 제공
어린 망둑어류 물고기가 아크로포라 산호 위에 나타났다. 이 물고기들은 평생을 똑같은 산호 틈에서 보내며, 독성 해초로부터 산호를 지킨다. 산호는 주변에 독성 해초가 나타나면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 ‘보디가드 물고기’를 부르고, 이 물고기는 해초류를 깎아버린다. 산호는 경호를 받고, 물고기는 경호의 대가로 서식지와 먹이를 얻는다. 사이언스 제공
영화 ‘보디가드’에서 경호원으로 나오는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는 휘트니 휴스턴을 향해 겨눈 총구 앞에 몸을 던지면서까지 의뢰인을 보호한다.

그런데 이런 ‘살신성인’의 자세를 가진 경호원들이 자연 세계에도 있다.

특히 뿌리를 땅속에 내리고 있어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이 주요 의뢰인이다. 대표적인 예가 쇠뿔아카시아 나무와 슈도머멕스 개미. 쇠뿔아카시아 나무는 소의 뿔처럼 생긴 거대한 가시에 개미를 살게 하고 이파리 끝에서 개미들이 먹을 수 있는 물질을 분비한다. 그 대가로 슈도머멕스 개미는 초식곤충은 물론이고 초식동물이 나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최근 이런 자연 세계의 공생관계는 주로 화학물질로 소통한다는 특징이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 비상! 독성 해초가 나타났다

깨끗한 바다에 사는 산호는 소화기관을 가진 ‘동물’임에도 땅에 박혀 움직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영양분의 80∼90%는 미세조류인 심바이오디니움이 광합성한 것에서 얻어야 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도 도망가지 못한다. 특히 산호 주변에 독성을 가진 해초가 자라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이때 산호는 자신만의 ‘보디가드 물고기’를 불러 독성 해초를 물리친다.

미국 조지아공대 생물학부 마크 헤이 교수팀은 피지 섬에 사는 산호와 공생 물고기가 화학신호로 소통한다는 증거를 찾아 ‘사이언스’ 9일자에 발표했다.

망둑어류로 알려진 약 2.5cm 길이의 이 물고기는 전 생애를 ‘아크로포라 나수타’ 산호의 틈 속에서 살면서 포식자에게서 몸을 피하고, 산호를 위협하는 독성 해초류를 없앤다는 것.

연구진은 아크로포라 나수타 산호를 위협하기 위해 화학적인 독성을 가진 해조류를 산호 주변에 뒀다. 잠깐 동안 해조류와 산호가 접촉하자 두 종의 망둑어류가 다가와 해조류를 깔끔하게 깎았다. 물고기의 반응 시간이 매우 빨라 독성 해조류가 산호에 닿지 않을 수 있었다.

헤이 교수는 “물고기들은 해조류 자체에는 반응하지 않았는데, 이는 산호가 물고기에 화학신호를 줘서 자신을 위협하는 해조류를 제거하도록 유혹한다는 걸 뜻한다”며 “다른 장소와 다른 종의 산호에서도 물고기가 반응하지 않는 걸 보아 서식지의 주인인 산호에만 반응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애초에 싹을 잘라라

양배추나방이 흑겨자 잎에 낳은 알에 기생일벌이 다시 알을 낳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양배추나방의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가 흑겨자 잎을 갉아먹기 전에 기생일벌 애벌레에게 잡아먹힌다. ‘양배추나방 알이 있다’는 화학신호를 보내 기생일벌은 먹이를 얻고, 흑겨자는 자신의 잎을 지키는 것이다. PLoS ONE 제공
양배추나방이 흑겨자 잎에 낳은 알에 기생일벌이 다시 알을 낳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양배추나방의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가 흑겨자 잎을 갉아먹기 전에 기생일벌 애벌레에게 잡아먹힌다. ‘양배추나방 알이 있다’는 화학신호를 보내 기생일벌은 먹이를 얻고, 흑겨자는 자신의 잎을 지키는 것이다. PLoS ONE 제공
땅에 뿌리박고 평생을 꼼짝 없이 사는 채소들도 산호와 비슷한 방식으로 위험에 대처한다. 잎을 갉아먹는 해충이 생기지 않도록 그 알을 먹는 ‘말벌’을 동원하는 것.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니나 파토우로스 박사팀은 흑겨자가 자신의 잎에 알을 낳는 양배추나방을 해치우기 위해 기생일벌을 부른다는 사실을 확인해 미국 공공과학도서관회지(PLoS ONE) 9월 5일자에 발표했다.

흑겨자는 자신의 잎에 양배추나방이 알을 낳으면 특정 화학물질을 뿌려 기생일벌에게 ‘먹이가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기생일벌은 양배추나방 알에 다시 알을 낳아, 기생일벌의 알이 부화하면 양배추나방의 알을 먹고살게 만드는 것이다. 흑겨자 입장에서 보면 기생일벌에게 향후 자신을 공격할 애벌레가 부화하지 못하도록 미리 ‘청부살해’하는 셈이다.

파토우로스 박사는 “나비의 알에서 나오는 특정한 화학물질이나 화학구조가 흑겨자 잎에서 변해 기생일벌을 유혹하는 것”이라며 “기생일벌은 알뿐 아니라 알을 낳는 나방까지 격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생태계 공생관계#화학물질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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