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Dr.Kim의 시원한 性의학]한류의 원조, 기예+패션 선도한 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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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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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으로 재점화된 ‘한류열풍’이 동남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의 가무 문화를 다른 나라에 널리 알리는 한류의 원조는 기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조선 팔도의 이름난 ‘예기(藝妓)’들이 한양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행사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사설극장 무대에 올라 가야금과 판소리를 공연하며 대중 연예인으로 탈바꿈했다.

고려시대부터 기예와 패션을 선도했던 기생들이 연예인으로 변신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조선말 기생들은 라디오 방송 음악프로에 나가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배우로, 모델로, 성우로 활약했다. 인기 있는 기생들은 일본이나 상하이로 진출했다. 13세에 기생이 되어 창가로 중국인의 심금을 울린 채란이 대표적이다. 그녀가 부른 ‘팔베개 노래조’는 1910년대 동북아시아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이처럼 한류바람의 원조였던 기생은 개화기 관기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수백 년 동안 예술인이면서 매음녀 역할을 하며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다.

기생들은 ‘노래는 팔지언정 몸은 팔지 않는다’는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을 실천하고자 했으나, 관아에 소속된 관기는 명에 의해 누구와도 살을 섞어야 했고, 돈을 벌어야 연명하는 사기는 더욱더 매음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선시대 매음녀의 으뜸은 비두(鼻頭)라 불린 기생이다. 가채를 틀어 얹은 모양이 코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갓 기생이 된 동기(童妓)의 처녀성을 살 때, ‘머리를 얹어 준다’고 표현했다. 직업여성과 잠자리를 하고 나서 미용실에 가라며 팁을 주는 것도 이런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은근히 권하여 몸을 판다고 해서 ‘은근짜(隱君子)’라 불린 기생들도 있었다. 도둑을 양상군자라고 부른 것을 빗댄 것으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군자라는 말을 음탕한 여성에게 붙여준 점이 이채롭다.

기생을 제외한 매음녀는 떠돌이 들병이인 유녀, 여사당패, 색주가의 작부 등이 있었다. 성개방화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의 매음녀는 복잡한 세상만큼이나 그 종류가 다양해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다. 전업 윤락여성을 비롯해 호스티스, 안마시술소나 티켓다방, 퇴폐 이발소 종사자 등 방법과 형태 등에서 천태만상이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를 매춘공화국이라고 혹평하기도 하는데,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김재영 퍼스트비뇨기과 원장
김재영 퍼스트비뇨기과 원장
성매매특별법이 있지만, 성매매를 근절시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성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성매수는 성병이나 성생활의 부작용을 낳기 때문에 기피해야 할 대상이다.

일부 남성 중에는 ‘회춘’을 목적으로 나이 어린 여성을 상대로 성 매수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의학적으로 전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흥분 등으로 복상사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당할 수도 있다. 또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성적 자극을 별로 느끼지 못해서 직업여성을 찾는다는 이유를 대기도 하는데,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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