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티어기술 탄생의 비밀]<상>김주곤 명지대 교수의 ‘슈퍼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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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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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살아나는 사막식물서 ‘전천후 쌀’ 힌트

《 최근 국내 과학계의 화두는 ‘자율성’이다. 과학자에게 연구 자율성을 줘야 창의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정부는 1999년 ‘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율적 연구문화를 시도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10년간 안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유롭게 연구한 사업단은 아이디어가 빛나는 ‘히트상품’을 여럿 내놨다. 사업단의 핵심 연구자들이 전하는 ‘히트상품’의 탄생 비결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가뭄에도 잘 버티고 수확량도 높은 ‘슈퍼 벼’를 개발한 김주곤 교수. 김 교수는 “사막식물에 들어 있는 유전자를 조작해 벼에 집어넣은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제공
가뭄에도 잘 버티고 수확량도 높은 ‘슈퍼 벼’를 개발한 김주곤 교수. 김 교수는 “사막식물에 들어 있는 유전자를 조작해 벼에 집어넣은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제공
“사막식물 중에 평소에는 바싹 말라서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 비만 오면 파릇파릇 살아나는 종류가 있어요. ‘부활 식물’이라고도 하는데 ‘트레할로스’라는 유전자가 20%가량 들어있는 이 식물이 매번 ‘살아나는’ 비결입니다. ‘슈퍼 벼’도 여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슈퍼 벼는 추위 가뭄 등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면서 수확량은 오히려 많은 유전자재조합(GM) 벼를 말한다. 김주곤 명지대 생명과학정보학부 교수가 2000년 처음 개발한 슈퍼 벼는 2001년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이 출범한 뒤 사업단의 최대 히트상품이 됐다.

슈퍼 벼를 처음부터 작정하고 히트상품으로 키운 건 아니었다. 1998년 김 교수는 지도교수인 미국 코넬대 레이 우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가 슈퍼 벼 연구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김 교수는 일반 벼에 트레할로스를 넣어 슈퍼 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이미 개발한 상태였다. 김 교수는 이 기술을 코넬대에 전수한 뒤 자신은 동글동글한 한국형 쌀로, 코넬대는 길쭉하고 얇은 쌀로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2002년 실험 결과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코넬대가 다국적 생명공학기업에 기술이전을 주도할 테니 수익금을 절반씩 나누자는 조건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코넬대는 듀폰 몬산토 바이엘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기업을 불러 슈퍼 벼 기술을 알렸다. 2007년 인도의 종자업체인 마히코와 첫 기술이전이 성사됐다.

김 교수는 “코넬대와 마히코의 슈퍼 벼 협상 과정에 참여하며 기술이전 노하우를 한 수 배웠다”며 “슈퍼 벼는 기술이전에 성공한 덕분에 히트상품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히코와 협상이 끝날 무렵이 되자 김 교수는 기술이전에 자신감이 생겼다. 또 벼에서 옥수수 콩 등 다국적기업의 주된 관심 작물로 시야를 넓혔다. 김 교수는 세계적 화학기업인 바스프의 문을 두드렸다. 사업단이 보유한 형질전환용 유전자를 팔기 위해서였다. 바스프는 2008년 사업단과 계약을 하고 상품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사들였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10개 남짓한 유전자를 팔았다”면서 “2009년부터 기술료를 받고 있는데 슈퍼 벼보다 금액이 더 많다”고 말했다.

슈퍼 벼가 물꼬를 트자 기회는 계속 생겼다. 2009년 김 교수는 가뭄에 잘 견디는 유전자에 관한 논문을 ‘식물생리학’ 저널에 발표했다. 이 논문이 온라인판으로 공개되자마자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세계적 농업 기업인 신젠타에서 연락이 왔다. 사업단은 2009년 말 마히코와 비슷한 규모로 신젠타와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김 교수는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90억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다국적기업들이 가뭄에 잘 견디고 수확량도 많은 작물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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