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자 발목잡는 ‘탈퇴 유예’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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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게임 약관없이 최대 석달 “취소땐 캐릭터 복구” 유혹… 마니아들 금단현상 재가입외국계 업체는 신청즉시 탈퇴

국내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인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아이온’에 한때 중독됐던 대학원생 A 씨(26).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고 희귀 아이템을 구하는 재미에 빠져 대학원 입학시험에서만 세 번이나 떨어졌다. 여러 번 손을 떼겠다며 게임 탈퇴를 신청했다가도 다시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탈퇴하려면 15일의 유예기간을 견뎌야 하는데 그 사이 탈퇴신청을 취소하면 기존 아이템과 캐릭터가 복구돼 유혹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A 씨는 “중독자였던 내게 보름은 너무 길고 가혹했다”며 “주변에서도 유예기간을 못 버텨 탈퇴에 실패한 사람을 여럿 봤다”고 했다.

17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일부 게임업체들이 15일∼3개월의 ‘탈퇴 유예기간’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바람에 게임 마니아들은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대표 MMORPG인 아이온과 ‘리니지 1, 2’는 모두 15일의 탈퇴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탈퇴 버튼을 클릭하면 ‘회원 탈퇴신청 후 취소를 원하시면 15일 이내에 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메시지가 뜬다. NHN에서 운영하는 ‘테라’는 30일의 유예기간이 있고 웹젠사의 ‘뮤’는 90일 이내에만 재가입하면 아이템이 원상 복구된다. 미국 블리자드사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나 국내 넥슨사의 게임들이 신청 즉시 탈퇴 처리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해당 게임 업체들은 “탈퇴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용자가 많아 불가피하게 유예기간 제도를 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홧김에 탈퇴한 뒤 후회하는 이용자를 배려해 만들어놓은 기간”이라고 했다. NHN은 “유료 게임 캐릭터나 무기는 일종의 사이버 자산으로 봐야 한다”며 “회원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재산을 한 번에 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예기간은 게임 가입 시 고지되는 이용약관에는 없는 제도다. 아이온의 가입 약관에는 ‘탈퇴는 회사가 고지한 방법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한다’고 돼 있다. 테라는 ‘자주 묻는 질문’ 코너에 ‘30일의 탈퇴 유예기간이 있다’고만 안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이승재 사무관은 “온라인 게임들이 가입하긴 쉬워도 탈퇴는 쉽지 않다”며 “정부가 유예기간 유무까지 규제할 수는 없지만 중독 증세가 있는 사용자에 한해 유예기간을 없애도록 유도하는 등 대안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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