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2차 발사 실패, 오늘로 1년… 다시 꿈꾸는 항우연 과학자 3人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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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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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원인조사에 지쳤지만 ‘540초의 꿈’으로 산다

나로호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 오르고 있다. 지난해 6월 10일 나로호는 두 번째 발사에 도전했지만 137초 후 고도 70km 공중에서 폭발했다. 동아일보DB
나로호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 오르고 있다. 지난해 6월 10일 나로호는 두 번째 발사에 도전했지만 137초 후 고도 70km 공중에서 폭발했다. 동아일보DB
《 1년 전 나로호는 137초를 날았다. 나로호의 꿈은 540초를 나는 것이다. 540초는 위성이 로켓에서 분리돼 우주로 날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 540초가 나로호에 허락되지 않았다. 못다 이룬 추가시간 403초는 여전히 ‘꿈’으로 남았다. 403초를 더 채우려 밤낮없이 달려온 이들이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로켓 과학자들이다. 8일 대전 항우연 회의실에서 그들을 만났다. 지난해 6월 10일 2차 발사 실패 이후 1년간 원인을 분석하느라 시달렸지만 내년 3차 발사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나로호가 날아갈 540초는 그들이 꾸는 ‘최고의 꿈’이다. 》
○ 나로호의 ‘발’ 킥모터 개발 조인현 추진제어팀장

조 팀장은 항우연이 제작한 나로호 2단 로켓의 ‘발’ 역할을 하는 고체 킥모터를 개발했다. 킥모터에는 1.6t 정도 되는 추진제(연료)가 담겨 있다. 나로호는 발사 후 390초가 됐을 때 킥모터가 점화된다. 발로 도약하듯 추진력을 얻어 과학기술위성 2호를 목표 궤도에 올려놓는다. 그래서 ‘킥’이다.

조 팀장은 “지난해 나로호가 이륙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이 안 났다”면서 “내 차례가 무사히,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고 회상했다. 킥모터의 성능은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 때 한 차례 증명됐다. 페어링 한쪽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킥모터는 정상적으로 점화됐다. 그는 “내년 3차 발사에 쓰일 2단은 벌써 다 만들어 스탠바이 상태”라면서 “2차 발사 조사가 마무리되면 언제든 3차 발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또래 팀장들보다 항우연 ‘입사’가 늦다. 1997년에야 항우연에 들어갔다. 그는 대우중공업에서 국내 최초 국산 기본훈련기인 KT-1의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는 “유체(流體)를 공부했고 박사학위는 연소 연구로 받았다”면서 “킥모터가 유체와 연소를 모두 다뤄야 하는 분야라 운명처럼 맡게 됐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외부에서 실패 원인에 대해 정확한 근거 없이 이러쿵저러쿵 말할 때 참 많이 속상하다”면서 “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성공할 때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 ‘눈’ 영상전송시스템 담당 이재득 전자팀장


이 팀장은 나로호에 ‘눈’을 붙인 사람이다. 나로호는 발사 직후 20초간 900m를 수직으로 올라가는데 이쯤 되면 맨눈엔 보이지도 않는다. 발사 3∼4초 후에 성냥개비만 해졌다가 10초 뒤면 점으로 변한다. 그 다음부터는 나로호에 달린 카메라가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로 영상을 전송해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 팀장은 이렇게 나로호의 ‘눈’ 역할을 하는 전자탑재시스템 개발을 총괄했다. 이 시스템은 영상 수치 등 나로호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지상으로 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눈’을 개발했기 때문에 나로호가 이륙한 뒤 위성이 분리될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면서 “종교도 없는데 어느새 내 손은 깍지를 끼고 이번만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의 가장 큰 걱정은 발사 전 고장 난 부품을 찾아 교체하는 일이다. 전자탑재체에는 부품이 1만여 개다. 아무리 완벽해도 확률상 1년에 1개 정도는 부품이 고장 난다. 이 팀장은 “발사 전에 고장이 발견돼 부품을 교체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1987년 항우연에 온 뒤 한국 로켓의 시초인 KSR-I을 비롯해 KSR-II, KSR-III, 그리고 나로호까지 개발한 로켓 개발의 산증인이다. 그는 “매번 할 때마다 개발과정이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다”면서도 “한번 발사하면 그때의 감동을 못 잊고 눈물 한 번 흘린 뒤 또 하게 된다”고 말했다.
○ ‘갑옷’ 페어링 덮개 만든 장영순 발사체구조팀장

나로호에는 ‘갑옷’이 하나 있다. 맨 꼭대기에서 위성을 보호하는 덮개인 페어링이다. 장 팀장은 페어링을 개발한 책임자다. 2009년 8월 25일 나로호 1차 발사 실패가 페어링 두 쪽 중 하나가 분리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간 맘고생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기도 하다.

장 팀장은 “1차 발사한 2009년 8월 25일 이후 사생활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페어링 부품만 400차례 실험하며 누구보다 2차 발사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2차 발사에서는 페어링이 분리되기도 전에 나로호가 폭발해 그의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장 팀장은 “소설 ‘쥐라기 공원’에 공룡이 뱉은 침이 눈에 들어가 실명한 뒤 공룡이 머리를 물 때 ‘아, 빨리 끝났으면…’ 하고 생각하는 대목이 나온다”면서 “지금이 딱 그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로호 3차 발사에 성공하고 빨리 한국형 발사체를 만들어야죠”라며 웃었다. 나로호 후속으로 개발되는 한국형 발사체는 100% 국산 기술이 들어간 토종 로켓이다. 로켓 3단 가운데 1단은 지름이 3.3m짜리 탱크(연료와 산화제가 같이 들어가는 원통)다. 장 팀장은 “지름이 2.9m인 탱크는 만들어봤지만 3.3m는 사실상 극한 기술에 도전하는 것”이라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 한-러 공동조사단 새로 꾸려 나로호 실패 규명 ▼
교과부 “제작사 빼고 민간전문가로 구성… 내달말 첫 회의”

한국과 러시아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한-러 공동조사단’이 새롭게 꾸려져 나로호 2차 발사 실패의 원인을 규명한다. 이에 앞서 한국 측 자체 조사단인 나로호 2차 발사조사위원회는 나로호 발사 실패의 책임이 2단 로켓을 제작한 한국 연구팀에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본보 9일자 A1면 참조
A1면 나로호 조사위 “2차발사 실패, 한국 책임”


양성광 교육과학기술부 전략기술개발관은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한 브리핑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러시아 흐루니체프사가 지난 1년간 네 차례에 걸쳐 한-러 공동조사위원회를 열었으나 양측의 기술적 자존심이 걸려 있어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 “교과부는 러시아 연방우주청과 협의해 한-러 공동조사단을 별도로 만들어 2차 발사 실패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러 공동조사위원회는 나로호 1단 로켓을 제작한 흐루니체프사와 2단 로켓을 제작한 항우연이 발사 실패에 따라 자체적으로 구성한 위원회로 그동안 조사에서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는 바람에 별다른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공동조사단은 흐루니체프사와 항우연 관계자를 배제하고 한국과 러시아에서 15명 안팎씩 총 30여 명의 민간전문가로 구성한다. 한국 측에서는 나로호 2차 발사조사위원회 멤버가 대부분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과부가 구성한 조사위는 국내 대학과 국방과학연구소 등 항공우주 전문가 17명으로 짜여 있으며 한-러 공동조사위원회와 별도로 국내에서 조사를 해왔다.

러시아는 발사체 품질을 인증하는 비(非)정부 기관의 부소장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한국은 위원장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한-러 공동조사단은 다음 달 말 1차 회의를 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대전=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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