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대명사 ‘에이전트 오렌지’는 어떤 물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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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유사구조로 식물성장 방해
부산물 다이옥신은 동물에 치명적

“사기꾼이 이마에 사기꾼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냐?”

착하고 성실해 보여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다며 친구에게 하소연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인간사는 물론이고 자연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와 가장 독성이 강한 다이옥신인 ‘TCD다이옥신’도 여기에 해당한다.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해 에이전트 화이트, 에이전트 블루 등 총 7가지 제초제를 썼다. 이 물질을 담은 드럼통의 띠 색깔로 구분했기 때문에 ‘무지개 제초제(Rainbow Herbicides)’로도 불린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됐을 뿐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된 게 바로 에이전트 오렌지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2,4-D’라는 성분과 ‘2,4,5-T’라는 성분이 반반씩 섞인 제초제로 잎을 시들게 해 식물을 죽이기 때문에 고엽제라고 부른다. 두 분자 모두 식물의 성장호르몬인 ‘옥신(Auxin)’과 구조가 비슷하다. 호르몬은 식물이나 동물 같은 다세포 생물이 자라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세포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다. 세포 하나하나는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한다.

옥신은 성장호르몬이지만 농도가 아주 높으면 오히려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고 결국 식물은 잎이 말라 죽는다. 식물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뿌리면 식물은 이를 다량의 옥신이라고 착각해 죽는 것이다. 식량작물인 벼 밀 같은 외떡잎식물은 2,4-D나 2,4,5-T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따라서 이 물질들을 적당한 농도로 쓰면 벼, 밀은 죽이지 않고 쌍떡잎식물 잡초만 죽일 수 있다.

원래 이 물질들은 동물의 성장호르몬과는 다른 구조라 동물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2,4,5-T를 합성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TCD다이옥신이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경우 2,4,5-T 10만 개에 6개꼴로 TCD다이옥신이 있었다.

TCD다이옥신은 식물한테는 별 영향이 없지만 동물에게는 치명적이다. TCD다이옥신은 동물의 세포 안에 있는 ‘AH수용체’ 분자에 달라붙는다. 그러면 이 수용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암이나 내분비계 교란 등 고엽제 후유증 증상을 일으킨다. AH수용체는 태아의 발생과정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에이전트 오렌지가 뿌려지는 동안 베트남에서 15만∼50만 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요즘은 TCD다이옥신 때문에 2,4,5-T를 제초제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2,4-D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초제다.

(도움말: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유선 교수)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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