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서 바로 쓸 수 있는 ‘적정 기술’ 한국서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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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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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국 관료-교수들 내한… 대학생들과 공학 세미나

전기 없이 계란을 부화시킬 방법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외국인과 학생들. 한금석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의견을 라시드 발로건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경청하고 있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전기 없이 계란을 부화시킬 방법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외국인과 학생들. 한금석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의견을 라시드 발로건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경청하고 있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아, 전기가 없다고요?” 일순간 학생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어떤 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그럼 태양열로 계란을 부화시키는 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지만 나이지리아에는 우기가 있으니 그에 따른 대책도 필요합니다.”

13일 강원 원주시 가나안농군학교 회의실. 외국인 20여 명과 국내 대학생 80여 명이 15개 조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의 목표는 적은 비용으로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적정기술’을 찾는 것이다.

앙골라,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 12개 국가에서 온 20여 명의 외국인은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열린 ‘제3회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공학설계 아카데미’에 참가했다. 대부분 정부 관료나 교수들이다.

전기가 필요 없는 계란 부화기에 대한 토론은 나이지리아, 필리핀, 중앙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 3명과 연세대, 한동대, 전남대, 서울시립대에서 모인 학생 6명이 벌였다.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한금석 씨(3학년)는 “가축 분뇨와 짚을 섞어 부패시키면 그때 발생하는 열로 계란을 부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연방농업대 라시드 발로건 교수는 “계란은 처음 14일 동안 3시간마다 위아래를 뒤집어줘야 한다”며 “집 안에 둘 수 있을 만큼 작으면서도 악취는 나지 않을 부화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동대 장재기 씨(3학년)는 태양열로 데운 물을 계란 부화기에 보일러처럼 넣는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발로건 교수는 “나이지리아는 우기(雨期)가 길어 태양열로만 물을 데우기는 한계가 있다”며 “이때는 습도도 높아 연료를 때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학생들은 날씨에 따라 습한 환경에서도 불이 잘 붙는 연료와 태양열을 번갈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형 계란 부화기’를 고안해냈다.

참가자들은 적정기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토론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금석 씨는 “제품을 직접 사용할 사람의 의견이 제품 설계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발로건 교수도 “빨리 고국에 돌아가 토론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고 기대했다.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이 도입할 수 있는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국내 단체인 ‘나눔과기술’ 대표 경종민 KAIST 반도체설계교육센터장은 “최근 적정기술은 산업계와 학계의 큰 흐름”이라며 “타국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얻고 학생들은 제품을 설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으니 양측에 모두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원주=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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