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본 조선왕조실록]<2>태조, 의술 뛰어난 왜인 발탁… 태종은 의학책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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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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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왕’ 하면 신분과 성별에 따라 사람을 엄격하게 차별하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기술을 중시하고 신분 국적 성별을 초월해 우수 인재를 등용하고 신임하는 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국제화, 평등화를 주장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조선의 태조와 태종이 대표적 사례다. 태조는 의술에 정통한 일본 승려 원해에게 머리를 길러 환속하게 하고 관직과 평씨 성을 줬다. 평원해는 태조 당시 명의인 양홍달과 함께 매일 대궐에 나올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1406년 평원해는 태종에게 약을 조제해 올렸다. 그런데 이 약을 먹은 태종이 구토를 하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임금에게 약을 먹이기 전에 먼저 맛보는 절차를 생략했다며 사헌부가 평원해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태종은 신하가 먼저 맛보게 안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그들을 용서했다.

태조는 가뭄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제생원이라는 의료기관을 설립해 빈민 및 걸인 치료와 미아 보호에 힘썼다. 신분을 막론하고 치료하도록 했다. 의원 수가 부족해 진료에 한계가 오자 지방 의사들을 불러 진료하도록 했다. 이 중 의술이 뛰어난 자는 관직에 등용하고 치료를 소홀히 한 자는 벌했다.

직접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지도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태종은 의사 조청이 열 살이 조금 넘은 아이에게 어른과 같은 약을 지어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상히 여겨 물으니 ‘약재에 관한 서적(약방서)에서 어린 아이(소아)라 함은 5, 6세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왕은 직접 약재에 관한 서적들을 찾아봤다. ‘천금방’이란 서적에서 ‘2, 3세는 영아(영兒)라 하고, 10세 이하를 소아(小兒·어린아이)라 하고 15세 이하를 소아(少兒·청소년)라 한다’는 문구를 발견하고 조청을 꾸짖었다. 태종은 이후 선진 의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외국 의학 서적을 모으고 배울 수 있도록 사람을 보냈다. 세계화는 조선시대에도 활발했음을 느낄 수 있다.

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건설문화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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