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박사 서효석의 건강 365] “몸에 좋은 약은 입에도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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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3일 14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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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을사보호조약 당시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단발령(斷髮令)’이었다. 상투를 자르라는 포고였는데 우리 조상들의 반응은 ‘내 목은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는‘내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털끝하나라도 다칠 수 없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라는 ‘효’의 개념에서 나온 반응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일제에 대한 저항이면서 동시에 수백 년 동안 지켜 내려온 관습에 대한 변화를 거부하는 반응이었다고 생각된다.

같은 일이 중국에서도 일어났었다.

중국 본토에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 것이 1644년인데 중국을 정복한 만주족은 앞머리를 깎고 뒷머리를 따는 변발령을 내린다. 이 때 저장성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나 내란으로까지 번지게 됐다. 그야말로 ‘내 목은 잘라도 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라고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청의 무력 앞에 난은 차례로 진압되었고 이후 중국인들은 250여 년 동안 소위 ‘황비홍 식’ 변발로 살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250여년이 흐른 뒤에 일어난 일이다.

쑨원(孫文)이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켜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뒤 내린 포고령이 변발 금지령이었다. 변발은 만주족의 풍습이니 이를 버리고 중국인의 정신을 찾자는 대의명분 세우기였는데, 250여 년 전 변발을 못하겠다고 난을 일으켰던 중국인들이 이번에는 변발을 못 자르겠다고 곳곳에서 저항이 일어났다.

이 역사적 사실에서만 보더라도 사람이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 왔거나 그렇게 살아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한방(韓方)’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있으니 바로 ‘한약의 검은 색과 쓴 맛’이다. 그리고 ‘이 약 먹는 동안에는 무엇 무엇을 먹지 말라’는 기피 음식이다.

필자가 개발한 편강탕은 검은 색이 아니라 맑은 보리차 색이며, 맛이 전혀 쓰지 않다. 전통적으로 한약의 색이 검었던 것은 약 탕관에서 약재를 달인 뒤에 짜 내리는 방법으로 제조했기 때문에 그렇다.

편강탕은 증기로 쪄서 받아 내리는 증류탕이라 검지 않다. 그리고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격언도 편강탕에는 맞지 않다.

뜨겁게 데워서 먹지 않고 차갑게 해서 먹는 것이 오히려 약효가 낫다.

그리고 편강탕에는 음식 기피를 두지 않는다. 만일 어떤 약을 먹을 때 기피해야만 하는 음식이 많다면 그렇게 과학적이라는 양방에서는 왜 기피를 두지 않을까? 이제 세상은 그야말로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다.

옛날 것만 고집해서는 비전이 없다. 한방(韓方)도 세계무대에 맞게 변해서 해외로 나가야 한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희미해진 단어이지만,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1910년 8월 29일을 국치일(國恥日)이라고 한다. 올해가 2010년이니 경술국치일로부터 100주년이 된다. 때마침 작년 말미에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후생연금 탈퇴 수당이 ‘99엔’이라고 통보되어 다시 한번 피해자들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여러 가지 감회가 떠올라 병 이야기가 아닌 한방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작년에 일본 오사카에 편강탕한약연구소를 개설했는데 전(全)일본생약학회 회장인 쇼야마 교수의 아들이 편강탕으로 아토피를 고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쇼야마 교수가 직접 한국으로 필자를 찾아서 감사 인사를 하러 날아왔던 것인데 어찌 감회가 깊지 않겠는가?

편강한의원원장

-바로잡습니다-
지난 주 본문 중에 ‘算’ 字는 오류였습니다. 시스템상의 오류로 한자가 바뀌었으며 정조 임금의 이름은 ‘이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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