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잔해, 호주 도심에 떨어졌다면…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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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분쟁 어떻게 풀까
‘우주책임협약’ 있지만 구속력 없어
발사의뢰-제작-피해국 다를땐 분쟁
국제우주법 전문인력 육성 과제로

8월 궤도 진입에 실패했던 나로호의 잔해가 만약 호주에 떨어졌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우주법 전문가들은 “발사를 의뢰하고 발사체를 공동 개발해 자국(나로우주센터)에서 쏘아 올린 우리나라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1단 엔진도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의뢰해 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상황이라면 어떨까. A국은 인공위성을 개발한 뒤 B국에 우주발사체 제작을 의뢰했다. B국은 C국의 발사대를 사용했다. 발사는 성공했지만 인공위성은 D국의 대형 통신위성을 강타했다. 이 위성은 지구로 떨어져 바다를 지나던 E국의 배를 침몰시켰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피해보상금을 지급해야 할까.

○ 우주법 모의법정서 가상재판

이런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국제우주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다 외국에 손실을 입혔을 경우 무조건 발사국이 책임을 진다’는 ‘우주책임협약’이 있어 발사 의뢰국, 발사체 제작국, 발사장 소유국인 A, B, C국이 협의해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이 협약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국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이처럼 우주시대에 발생할 국제 분쟁을 미리 논의하는 자리가 있다. 국제우주법협회(IISL)의 ‘만프레트 라흐스 우주법 모의법정대회’다. 1992년 시작된 이 대회는 매년 아시아태평양, 유럽, 북미의 지역예선을 통과한 세 팀이 국제우주대회에서 맞붙어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올해 결승전은 ‘2009 대전국제우주대회’의 일환으로 대전 유성구 ‘솔로몬로파크’에서 15일 열렸으며 피고(T국)를 변호한 인도팀이 최종 우승했다. 대회를 총괄하는 국제우주법협회의 리키 리 변호사는 “가상 판례지만 앞으로 벌어질 우주 재판에 참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는 위성을 둘러싼 복잡한 우주 분쟁이 벌어졌다. F국의 인공위성으로 이뤄진 대륙간 미사일 방어체계가 자국 상공 100km 밖 우주를 지나던 적대국 T국의 우주선을 오인해 격추했다. T국은 보복으로 F국의 인공위성 방어시스템을 괴멸시켰다. 항공우주법을 연구하는 이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57년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뒤 어떤 국가도 자국 상공 위 우주를 지나는 물체에 대해 ‘영공침해’라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우주는 영공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관습법’이 생겼다”며 “대부분 나라들이 동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 국제우주정거장서 성희롱 발생하면…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2004년 대회의 주제였다. Z국의 미녀 모델이 우주인 선발대회에서 우승해 훈련을 마친 뒤 우주정거장으로 향했다. Z국은 모든 비용을 훈련과 발사를 총괄한 P국에 지불했다. 그러나 ISS에서 P국의 우주비행사가 Z국의 모델을 성희롱했다. 화가 난 그녀는 P국 우주비행사를 폭행했다. 부상이 심해 두 사람은 같이 지구로 돌아왔는데 P국은 우주비행사가 없어 많은 손해를 봤다. P국은 결국 Z국을 고발했다. 현재 우주정거장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해도 처리할 법은 없다.

지금까지 우주와 관련해 벌어진 국제 분쟁은 당사자끼리 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실정이다. 1980년대에 수명이 다한 러시아의 인공위성이 지구로 추락하며 타고 남은 잔해가 캐나다 삼림지대에 떨어진 적이 있다. 캐나다가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피해보상을 요청했지만 법적 공방으로 가지는 않았다. 러시아가 300만 캐나다 달러(약 34억 원)를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소송을 끝냈기 때문이다. 준결승전 의장을 맡았던 이상면 서울대 법대 교수는 “우주개발을 시도하는 나라가 늘고 있어 우주 분쟁이 늘어날 소지가 충분하다”며 “우리나라도 국제우주법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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