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이 아이에게 함박웃음을…”
코리안 축산기술로 희망 심다
식량난 해결 위해 가축개량 앞장
소 체외수정 기술 전수 임신율 높여
수면병 등 열대성 질병-AI도 연구
“드디어 다음 주예요. 체외수정 방식으로 임신된 송아지가 20일쯤 태어날 예정입니다. 한국에 정말 고맙죠.”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국제축산연구소(ILRI)에서 만난 가축유전학자 오케요 므와이 박사는 살짝 흥분돼 있었다. 케냐에서 체외수정으로 송아지를 얻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므와이 박사팀에 체외수정 기술을 전수해준 건 바로 한국 과학자들이다.
아직은 생소한 땅 아프리카가 한국 과학계에 손을 내밀고 있다. 그곳은 우리에게 미래의 연구 방향을 보여주는 가능성의 땅이기도 하다.
○ 축산기술은 가난 벗어날 기회
세계 각국의 저명한 축산학자들이 모여 있는 ILRI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곧바로 빈민가가 나온다.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에는 전기와 수도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나면 사정은 더 나쁘다.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은 농작물과 가축. 케냐 농민의 약 70%가 가축을 기른다. 케냐에선 우유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 특히 소가 중요하다. 이곳의 재래종 소는 먹는 양에 비해 우유 생산량이 적다. 케냐 과학자들이 가축 개량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축 개량 기술이 바로 체외수정이다. 우수한 암소의 난자에 우수한 수소의 정자를 주입해 만든 수정란을 대리모 암소의 자궁에 착상시켜 송아지를 얻는 것이다. 생식세포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하고, 자궁 내 환경도 세밀하게 조절해야 해 매우 까다롭다. 임신율이 10%에도 못 미치기 일쑤다. 므와이 박사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과 경상대의 과학자들이 찾아와 기술을 가르쳐준 결과 임신율을 40%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 아프리카의 희망, 한국 과학
이처럼 한국 과학자들이 새로운 농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케냐에선 과학계와 농가를 중심으로 한국에 거는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올 6월엔 케냐농업연구원장 등 고위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연구 교류를 요청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파견 나온 오성종 박사는 “케냐 농민의 대부분은 5000평 미만의 소작농”이라며 “좁은 땅에서 생산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연구해온 한국의 농업 기술이 적합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 열대성질병과 AI 국제공동연구 참여
희한하게도 아프리카 재래종 소인 엔다마는 체체파리에 물려도 끄떡없다. 오 박사는 ILRI에 근무하는 영국 리버풀대 스티브 캠프 교수팀과 함께 엔다마의 유전자를 분석해 다른 소와 달리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캠프 교수는 “경상대 연구팀과 함께 이 유전자를 없앤 복제 소를 만들어 정확한 기능을 알아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축산과학원 류재규 박사팀은 ILRI에 근무하는 이탈리아 투시아대 셰일라 세실리 옴메 연구원과 함께 아프리카 재래종 닭을 이용해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강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계획이다. 아프리카 닭도 특정 유전자(Mx)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Mx는 AI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이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다.
케냐는 한국의 선진 축산기술을 배우고, 한국은 새로운 국제공동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독창적인 민간외교 모델을 외교관이 아닌 과학자들이 제시한 셈이다.
나이로비·나쿠루=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