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갑자기 연기한 배경은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정부, 사회갈등 이슈 피하기인가
靑의 ‘공론화 위원’ 불만 탓인가

출범 1주 앞두고 연기
“원자력 주도권 싸고 부처간 알력도 작용”

정부가 두 번의 연기 끝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의 새로운 논의 일정을 6일 다시 발표했다. 지난달 말부터 공론화를 시작한다는 계획이 1년 이상 늦춰져 우선 공론화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고 전문가 용역부터 다시 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동안의 논의를 거의 백지화하는 셈이다.

이 같은 새로운 일정은 공론화 전반을 담당할 예정이었던 공론화위원회의 출범을 불과 1주일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그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정부가 사용 후 핵연료 처리 같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보다 자꾸 뒤로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보름 만에 갑자기 바뀐 정책

사용 후 핵연료의 공론화 논의는 참여정부 때인 2004년 12월 원자력위원회의 결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사용 후 핵연료의 종합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2007년 4월 공론화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으며, 1년 뒤 일반인 대상 공론화 방안을 포함한 공론화 권고보고서 초안이 나왔다.

2009년 7월 중순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돼 14명의 위원과 위원장이 내정됐다. 7월 29일에는 위원 위촉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불과 보름 만인 같은 달 31일 위원회 출범이 무기한 연기되더니 공론화 일정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공론화위원회의 현판식과 첫 회의가 예정돼 있던 8월 6일에는 두 쪽짜리 간단한 내용의 새로운 로드맵이 나왔다.

새 로드맵은 2004년 이후 5년 동안 추진해 온 공론화 논의를 하루아침에 뒤엎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는 “사안이 워낙 전문적이고 기술적이라 과학적 검토 없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공론화가 추진되면 불필요한 논란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TF에 참여했던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은 “전문가그룹 용역과 일반인 대상 공론화를 병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 학자는 “전문가그룹 용역은 할 만큼 했다”고도 했다.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으로 올 8월 이후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홍보와 교육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었던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과 원자력문화재단은 남는 예산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고 있다.

○ “정부의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공론화 TF에 참여한 복수의 인사들은 현 정부가 공론화 작업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론화 개념 자체가 이전 정부 때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 일반 국민 대상의 공론화는 덮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광우병 파동 이후 사회적 갈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현 정부가 공론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공론화 위원으로 내정된 인사에게 청와대가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고 말했다. 내정된 일부 공론화 위원이 현 정부가 아닌 이전 정부의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 내부의 의견조율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경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모두 부인했지만 부처 간 알력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계의 한 인사는 “교과부와 지경부가 현재 두 부처로 양분된 원자력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지경부에서 공론화위원회를 졸속으로 구성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공론화 논의에 관여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내정됐던 14명 중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인사나 시민단체의 의견을 대변할 만한 인사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안”

지경부 관계자는 이 모든 잡음과 연기가 “(공론화를) 더 잘 해 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용 후 핵연료 권고보고서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방안 결정은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안이며 그 결정에 따라 현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안전과 삶의 수준이 담보되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또 다각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일부 전문가그룹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고 밀어붙이기식 접근 방식도 해결책이 아니라고 적시했다. 정보 전달의 객관성, 의견 수렴 및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담보된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프랑스는 무려 15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검토해 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을 정했으며 독일은 10년 동안 비교 연구를 한 후 관리방안을 결정했다.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은 7년 후인 2016년부터 포화 상태가 된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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