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죽이는 ‘반칙의 게임’

  • 입력 2008년 8월 13일 03시 07분


수십억 투자 새 게임 완성 눈앞인데 핵심인력 대거 이탈

인재싸움 영향 개발팀 전체 빠져나가기도

업계 관계자 “경쟁력 약화-기술 유출 우려”

국내 게임업계가 개발인력의 중도 이탈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허우적대고 있다.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 이상 투자한 대작게임 개발 과정에서 핵심 인력 또는 개발팀 전체가 빠져나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게임 시장 전체가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리니지’ 시리즈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는 최근 자사(自社)가 2005년부터 개발해 온 ‘리니지3’의 핵심 기술과 개발팀을 빼돌려 타사로 갔다는 이유로 전 개발팀장 박모 씨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6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한 모바일게임업체 사장 A 씨는 “그동안 곪고 곪았던 문제가 최근에야 터져 나오는 느낌”이라며 “게임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력 유출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지만 자신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경우가 많아 공론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 만성적으로 이뤄지는 게임업계의 인력 이탈은 비단 한 개발사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웹젠은 회사의 미래를 건 차기작 ‘헉슬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전체 개발자 100명 중 무려 절반 가까운 40여 명의 개발자가 중간에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개발 환경과 근무 처우가 열악한 중소 업체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 한 중소 게임개발사의 관계자는 “개발자들이 ‘있어만 줘도’ 고마워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핵심 개발자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다 보니 한 명이 떠나면 해당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수적으로만 보면 한국의 게임전문 인력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풍부하다.

한국게임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게임업계 종사자는 3만6828명이다.

그러나 게임업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를 한 업체 기준으로 따지면 업체당 28.7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서도 소위 ‘A급 개발인력’으로 분류되는 핵심 인재는 채 몇 백 명이 안 되다 보니 인재싸움이 격해지고 있다는 게 게임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소수의 개발자를 제외한 상당수 개발자는 근무 강도에 적합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개발업체로 자주 직장을 옮기는 관행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다수 개발자가 게임이 정식 출시되기 직전인 ‘클로즈 베타’나 ‘오픈 베타’ 시기에 회사를 옮기다 보니 개발 경쟁력 저하나 기술 유출의 위험도는 더 높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등 해외에서는 막대한 자금과 탄탄한 개발 시스템을 바탕으로 히트작을 다수 만들어내며 국내 업체들의 글로벌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원 측은 “개발인력 ‘엑소더스’로 인한 폐해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개발업체들이 퇴사나 이직 인원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관련 통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굿모닝신한증권 최경진 수석연구원은 “롤플레잉게임(RPG)의 경우 개발기간이 짧아도 3년씩 걸리는데 상당수 업체가 내부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기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며 “아무리 돈을 많이 투자한 게임이라도 출시 시점을 놓치면 트렌드에 뒤떨어지거나 유저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