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동종요법, 동물에도 잘 듣네”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9분


지금까지 사람에게 주로 적용돼 온 동종요법을 동물에게 적용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수의사들이 동종요법 치료제를 앞에 두고 토론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지금까지 사람에게 주로 적용돼 온 동종요법을 동물에게 적용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수의사들이 동종요법 치료제를 앞에 두고 토론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10일 오후 9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동물병원. 동물들도 거의 잠든 이 시간에 9명의 수의사가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사람에게 활용되는 ‘동종요법(同種療法)’을 동물에게 적용시키는 연구 강의를 듣기 위해 모였다. 강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양현국 동물병원 원장. 강의는 밤 12시를 넘어 4시간에 걸쳐 진행됐지만 수강생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토론에 열중했다.

○ 수의사들 동물에도 적용 연구 활발

동종요법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식물, 광물, 동물을 아주 적은 양만 사용하면 오히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원리에 기초한 치료법이다. 가령 중이염이 생기면 서양의학에서는 염증억제제와 항생제를 먹도록 한다. 그 반면 동종요법은 중이염을 일으킬 수 있는 할미꽃 계통의 식물인 ‘펄사틸라’를 물에 희석한 뒤 알약으로 만들어 환자에게 먹여 치료한다.

1990년대 초 국내에 들어온 동종요법은 주로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데 활용돼 왔다. 국내 동물 질환이 급증하고 있지만 동물 치료에 대한 연구는 크게 뒤처져 있다. 동물 치료에 동종요법을 활용하는 것은 지금 막 시작하는 단계다.

양 원장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약효는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면서 “동물의 구토, 설사, 기침, 고열 등의 급성 질환과 발작, 운동신경 마비, 스트레스, 우울증 등에 모두 동종요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의를 듣던 유경수 21세기 동물병원 원장은 “의학이 발달한 국가는 사람과 동물 치료가 골고루 발전했다”면서 “동종요법이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단계여서 정보 교환이 힘들었는데 오늘 좋은 공부를 하게 됐다”고 기뻐했다.

○ 거짓말 못하는 동물의 세계

양 원장이 동종요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동종요법의 효과 때문이었다.

5년 전 우연한 기회에 동종요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양 원장은 ‘근거 없는 의학’이라는 생각에 임상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동물에게 적용해 보기로 했다.

처음 적용해 본 질환은 개한테 흔하게 나타나는 마른기침이었다. 개의 마른기침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항생제, 기관지 확장제 등을 사용해 치료한다.

그는 항생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대신 급성 기침, 고열, 발진 등을 일으키는 ‘벨라도나’라는 식물을 개에게 먹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침을 멈췄다.

양 원장은 “지금까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동물에게도 잘 듣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물은 사람과는 달리 ‘위약(僞藥·플라시보) 효과’가 없기 때문에 동종요법의 효과 여부를 즉시 알 수 있다. 가령 사람에게 가짜 비아그라를 먹였을 때 그 효과가 나타난다면 이는 플라시보 효과에 의한 것이다.

양 원장은 개에게 나타나는 유방종양, 척추디스크 등의 치료에도 동종요법을 활용했다. 그는 최근 한 국내 제약사와 연계해 산업동물(돼지, 닭, 소 등)에게 생기는 전염성 질환에 항생제 대신 동종요법 약물을 이용해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 희석에 희석을 거쳐서 만든다

동종요법 치료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 식물, 광물을 주원료로 하며 극도로 희석해 만든다.

희석은 15∼85% 알코올이나 증류수로 하며 물질의 성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희석에 희석을 거친다. 이를 동종요법에서는 그 물질의 ‘에너지’라고도 부른다.

동종요법 전문가들은 “재료가 극도의 희석 상태에서 몸에 들어가면 면역체계를 자극해 면역력을 높여준다”면서 “물질을 희석했기 때문에 부작용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유 원장은 “상대적으로 침체된 동물 치료 연구에 동종요법과 같은 다양한 치료법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면서 “국내에서는 동종요법이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약물은 대부분 미국, 영국 등의 약물 판매 웹사이트를 통해 구입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동종요법 활용은

천식-아토피-관절염 등 만성질환에 주로 처방

동종요법은 1790년대 독일의 사무엘 하네만 박사가 처음 개발한 후 유럽, 남미를 거쳐 미국, 인도를 중심으로 발전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매년 5억 명이 동종요법을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는 1990년대 초 처음 도입됐으며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가천의과대 길병원, 을지대의대 을지대학병원, 강남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등 대학병원의 대체의학센터 중심으로 동종요법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동종요법(homeopathy)은 그리스어로 ‘homoios(비슷한)’와 ‘pathos(괴로움)’를 합친 말로 환자에게 질병과 비슷한 괴로움을 인위적으로 유발해 자연치유 능력을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동종요법이 다루는 질환은 주로 만성질환이다. 예를 들면 알레르기 질환(습진, 천식, 아토피), 과민성 대장증후군, 편두통, 부인과 질환, 심리적 질환, 관절염 등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하거나 서양 정통의학에서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질환이다.

동종요법은 사람이 호소하는 증세로만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 체질, 병의 감정적인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된다. 따라서 동종요법을 치료받는 환자는 최소 2시간 정도의 상담시간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럽, 인도, 남미, 호주, 남아프리카 등에서는 동종요법 클리닉이나 약국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됐다. 특히 인도는 정통 의과대와 마찬가지로 6년 공부 후 의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 유럽과 남미에서는 동종요법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지급도 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동종요법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동종요법에 사용되는 약물은 캐모마일, 아르니카, 아르세니쿰 알붐, 벨라도나, 하이페리쿰, 넉스 보미카, 스폰지아 토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캐모마일은 칭얼대는 응석받이 아기에게 사용하면 진정 효과가 있다. 아르니카는 타박상에 효과가 있고, 아르세니쿰 알붐은 식중독 설사 등에 사용한다. 벨라도나는 급성 고열, 넉스 보미카는 치질, 스폰지아 토스타는 기침, 하이페리쿰은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다쳤을 때 많이 사용한다.

국내 동종요법을 취급하는 의사들은 주로 동종요법 관련 외국 웹사이트(www.helios.co.uk, www.webhomeopath.com)를 통해 치료 약물을 구입한다.

(도움말=김영구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대체의학대학원 교수, 양현국 동물병원 원장)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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