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숨쉬는 金… 우리도 금맥 캔다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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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발상으로 신종-미기록종 찾는 과학자들

하잘것없어 보이는 속눈썹도 과학자에겐 훌륭한 실험도구가 될 수 있다. 상명대 이진환 교수팀은 바닷물이나 민물에 떠다니는 단세포 조류(藻類)인 식물플랑크톤을 연구한다. 미세한 플랑크톤을 다루기에는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끝이 뾰족한 속눈썹이 제격이란다.

이 교수팀은 속눈썹을 이용한 독특한 연구방법을 고안해 지난해 신종 및 미기록종 식물플랑크톤을 160여 종이나 새로 발굴해 냈다.

○ 속눈썹이 플랑크톤 집는 족집게

강이나 바다에서 떠온 물을 플라스틱 병에 담고 포르말린이나 글루틴알데히드 같은 화학용액을 넣은 다음 약 30시간 방치해 두면 병 바닥이 녹색이나 갈색, 황색으로 얇게 덮인다. 식물플랑크톤이 가라앉은 것. 화학용액 때문에 살아 있을 때의 모양 그대로 고정된 것이다.

물을 따라내고 질산과 황산을 넣어 살짝 끓인다. 그러면 세포질과 핵이 빠져나가고 식물플랑크톤의 겉부분(규산질)만 남는다. 이걸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100분의 1mm보다 작은 플랑크톤이 수없이 많이 뭉쳐 있다. 지금부터 속눈썹이 활약할 차례.

속눈썹을 한 가닥 떼어 가느다란 대나무 끝에 살짝 붙인다. 현미경을 보며 식물플랑크톤 덩어리에 이 도구를 대고 속눈썹 끝으로 플랑크톤을 하나씩 집어 들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주사전자현미경으로 20만 배 확대해 미세 구조를 관찰하면서 어떤 종인지 분류한다.

이 교수는 “속눈썹을 사용하는 것은 20년 전 한 학생이 고안해낸 우리 연구실만의 비법”이라며 “화학고정액이나 질산, 황산의 농도 조절도 고도의 숙련자가 아니면 어려운 기술”이라고 말했다. 농도가 잘못되면 플랑크톤이 찌그러져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없다.

이 연구는 지난해부터 2014년까지 진행되는 환경부의 ‘자생생물 조사·발굴 연구사업’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 서식하는 생물 전체를 조사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생물을 발굴하는 이 사업에는 약 200명의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원래 알려져 있었는데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종은 미기록종,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된 종은 신종으로 기록한다.

○ 미기록종 기생파리로 ‘나방 제거’ 길 열어

한국외국어대 조기성 교수팀은 신종 세균을 찾으러 염전에도 들어간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독특한 환경일수록 새로운 세균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어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염전 밑바닥을 긁어와 실험실에서 분석해 보면 오랫동안 짠 환경에서 적응하며 진화해 온 호염성 세균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석순자 박사는 버섯 연구만 20년째다. 해마다 적어도 서너 달은 산에서 버섯을 채집하는 데 보낸다. 최근 석 박사는 국내에서 채집한 수레바퀴애주름버섯의 미세구조를 분석한 결과 유럽산과 분명히 다른 신종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생생물 사업단이 지난해부터 발굴한 신종 및 미기록종에는 이처럼 그동안 연구가 미흡하던 세균이나 진균, 플랑크톤 같은 하등생물과 곤충을 비롯한 무척추동물이 특히 많다.

영남대 이종욱 교수가 이끄는 곤충 연구팀은 이번에 200종의 신종 및 미기록종을 발굴했다. 수도고니아 루피프론스는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미기록종. 애벌레 시절 불나방이나 밤나방 몸속에 기생하면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기생파리다. 이 교수는 “농산물에 피해를 주는 불나방이나 밤나방을 농약을 쓰지 않고 제거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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