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는 슈퍼맨∼ 우리 몸 지키는 산소맨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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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사라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뜻이죠.

사람들에게 나는 그런 존재입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냄새가 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쉴 틈 없이 사람들에게 봉사하죠. 최근 저명한 화학자들이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사실들을 잇달아 밝혀내고 있습니다.

○ 산소 결핍 땐 몸속 효소들 제 기능 못해

상한 음식을 먹거나 심한 공해를 겪거나 해로운 미생물이 들어오면 사람의 몸속에선 독성물질이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생리활동이 일어나면서 노폐물이 생기기도 하죠. 건강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이런 물질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SOD라는 효소에 내가 달라붙으면 노화를 일으키는 주범인 활성산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대개 물에 잘 녹지 않는 노폐물도 내가 달라붙으면 오줌이나 땀에 녹아 몸 밖으로 배출되죠. 육각형 고리 모양의 발암물질은 더 골치 아픈 놈입니다. 일단 고리부터 끊어야 녹거든요. 고리를 깨는 효소도 내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의 몸은 스스로 항암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적군(종양)이 많아지는 경우를 대비해 아군(항암물질)을 미리 갖춰 두려는 전략이에요. 효소가 나를 사용해 항암물질을 합성한다는 것도 모르셨죠.

항암제가 몸 안에 들어와도 내가 없으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아요. 현재 병원에서 많이 쓰는 블레오마이신이 좋은 예입니다. 블레오마이신이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파괴하려면 먼저 내게 달라붙어야 합니다. 혼자서는 힘을 못 쓰거든요.

남자건 여자건 사람의 몸속에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여성 호르몬은 효소가 남성 호르몬을 약간 변형시켜 만드는데, 이 반응에도 내가 있어야 합니다.

○ 국제 화학저널 특별판 편집장을 한국인이 맡아

미국화학회에서 발간하는 국제학술지인 ‘어카운트 오브 케미컬 리서치’가 17일 내 활약상을 모은 특별판을 내놓았습니다. 이 특별판은 사람 몸속에서 내가 하는 일들을 추적하고 있는 세계적인 과학자 18명의 최근 연구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편집장이 반갑게도 한국인 과학자인 남원우 이화여대 나노과학부 교수입니다. 특별판의 편집장을 아시아에서 맡은 건 남 교수가 처음이라고 하네요. 이번 특별판은 미국화학회의 온라인 소식지인 ‘케미컬 앤드 엔지니어링 뉴스’ 23일자에도 소개될 예정입니다.

특별판을 들여다보니 요시히토 와타나베 일본 나고야대 화학과 교수는 내 도움을 받는 여러 효소를 돌연변이로 바꿔 봤더군요. 내가 사람 몸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겠죠. 실험 결과 내가 없으면 효소들도 맥을 못 춘다는 걸 눈치 챈 모양입디다.

스티븐 리퍼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과 교수는 오염된 물에 사는 세균들이 나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아냈습니다. 이 세균은 더러운 물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으려고 나를 이용해 메탄을 메탄올로 바꿉니다. 내가 없으면 결국 이 세균은 죽고 말겠죠.

○ 성인 하루 소모량 1만4400L

하루 생활하는 데 2000kcal 정도의 에너지를 쓰는 성인에게는 내가 약 1만4400L(약 750g)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중 95% 이상은 음식으로 섭취한 영양소를 태워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쓰이죠.

남 교수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몸속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각종 효소의 활동에 내가 쓰이는 양이 전체 소비량의 0.5%도 채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치가 적다고 무시하면 큰코다칩니다. 생리현상 조절이나 건강 유지 등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니까요.

아,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고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내 이름은 바로 산소입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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