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별’ 주인공들 아직도 ‘별’을 쏜다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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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본사 회의실에 둘러앉은 박성동 사장, 장현석 부사장, 이현우 책임연구원, 김병진 부사장(오른쪽부터). 이들은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시절부터 끈끈한 선후배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사진 제공 쎄트렉아이
대전 본사 회의실에 둘러앉은 박성동 사장, 장현석 부사장, 이현우 책임연구원, 김병진 부사장(오른쪽부터). 이들은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시절부터 끈끈한 선후배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사진 제공 쎄트렉아이
《올해는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쏜 지 15년이 되는 해다. 우리별 1호는 1992년 8월 11일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후 5년간 지구를 돌며 각종 관측 임무를 수행한 뒤 지금은 ‘용도 폐기’된 상태. 우리별 1호 발사 성공으로 자신을 가진 한국은 아리랑 1∼2호, 무궁화 1∼5호를 차례로 쏴 올리며 세계 6대 위성보유국 반열에 올라섰다. 당시 우리별 1호 개발을 주도한 과학계 샛별들은 15년이 지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소형위성 회사 차려 말레이시아에 수출

우리별 1호를 제작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1989년 영국 서리대로 파견한 연구원 5명 가운데 박성동, 장현석, 김병진, 민승현 연구원은 벤처기업가로 변신했다.

2000년 이들은 KAIST를 나와 민간 인공위성개발회사 ‘쎄트렉아이’를 차렸다. 우리별 1∼3호 개발에 참여한 핵심 개발진 20명도 참여했다. 현재 박성동 연구원이 대표이사를, 장현석 김병진 두 연구원이 부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공략 대상은 100kg 안팎의 소형위성 시장. 미국 러시아 등 우주 개발 선진국이 대형 위성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찾아낸 틈새시장이다. 우리별 1∼3호를 개발하는 동안 기술을 충분히 확보했지만 국내 시장이 좁으니 해외부터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첫 성과는 2001년 올렸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1500만 달러 규모의 관측위성 1대를 수주한 것. 창업 직후인 2000년부터 말레이시아의 한 회사와 위성에 실을 광학 카메라를 공동 개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위성 본체에 들어가는 부품, 관제장비,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모두 이 쎄트렉아이가 만들었다. ‘라작샛’이라고 불리는 이 위성은 올 11월 적도 부근에서 발사될 예정이다. 지난해 5월에는 중동의 한 국가에서 또 한 대의 위성을 수주했다.

박 사장은 “인건비, 제작비, 발사비를 뺀 순이익이 20∼30%에 달한다”고 말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0억 원.

처음 ‘우리별 출신’들이 민간 인공위성 회사를 차리겠다고 결심했을 때 찬성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족은 물론 아는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도 있는데 왜 무모한 짓을 하느냐”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우려는 기우였다. 신생기업이었지만 ‘우리별 출신’ 기업을 보는 해외 ‘고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해외바이어들은 우리별 출신들이 만든 작고, 싸고, 가격 대비 기능이 좋은 위성에 후한 점수를 줬다.

1000kg급 위성에 가로세로 10m인 물체를 구별하는 망원경을 싣는 게 보통인데 10분의 1 크기인 위성에 그보다 성능이 좋은 2.5m급 망원경을 싣겠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대형 위성에나 쓰이는 ‘명품’ 기능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다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한몫했다.

이 정도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현재 영국 독일 한국 등 3, 4개 나라가 고작. 특히 영상처리 분야는 세계 수준급이다. 장 부사장은 “우리별 위성 개발 과정에서 위성 설계, 발사, 제어, 운영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습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우리별 1호의 자세제어를 맡았던 이현우 책임연구원은 비교적 늦게 합류한 경우. 그는 2003년까지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 남아 과학위성 1호의 개발 총책을 맡았다. 현재는 수출위성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고 있지만 틈틈이 짬을 내 위성의 정밀제어에 필요한 ‘별 센서’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별 1호 주역들은 곳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당시 이들을 발굴해 인재로 키운 최순달 교수는 쎄트렉아이 회장에서 물러난 뒤 현재는 KAIST 명예교수로 돌아가 국내외 기업이나 기관에 위성 개발에 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 영상처리분야 등 세계수준급 기술 개발

쎄트렉아이 창업 멤버를 제외하고 영국 서리대로 건너갔던 첫 멤버 중 지금까지 위성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최경일 박사뿐이다. 그는 1993년 우리별 2호를 발사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학위를 받고 현지 위성회사에 취업했다. 지금은 인도에 파견돼 위성 개발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신 연구원은 학계로 진출했다. 그는 현재 충남대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김성헌 연구원은 1999년 우리별 3호 개발을 끝낸 뒤 미국에 건너가 의공학 분야로 진로를 바꿨다.

이들보다 1년 늦게 서리대로 파견됐던 박강민 박사는 지금은 국방과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위성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박 연구원과 함께 파견됐던 유성근 연구원은 위성이나 산업용 기계에 들어가는 광학카메라를 개발하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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