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5.2지진 서울서 발생한다면 수도권 건물 6만여채 ‘와르르’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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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군에서 20일 일어난 것과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서울이나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내에도 지진 상황을 가정해 피해 규모를 예측해 보는 모의실험(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있으며 이 시스템을 통해 예측 결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22일 확인됐다.

정부가 지난해 8월부터 사용 중인 지진재해대응시스템은 지질 정보와 건축물 정보 등 기초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 지역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의 건물과 인명 피해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결과는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리히터 규모 5.0 이상의 지진 서울에 발생 시 대형 피해=한 민간 전문가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서북쪽으로 1.39km 떨어진 지점(위도 37.62, 경도 126.96)에서 리히터 규모 5.2의 지진이 30km 깊이에서 오후 3시 48분경 일어난다는 가정하에 시스템을 구현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모니터에 보이는 지도 위에 마우스로 원하는 지점을 표시하자 위도와 경도 수치가 자동으로 계산됐고 발생 시간과 지진 규모, 발생 깊이 등을 입력하자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몇 분 후 시도별뿐 아니라 읍면동 단위로까지 건축물 피해와 인명 피해 상황이 나왔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이 모두 피해를 봐 6만293채의 건물이 붕괴(전파)되고 3만6197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가 일어나는 것으로 나왔다. 서울 시내에서는 5만2530채의 건물이 붕괴되고 시민 2만7640명이 사망한다.

이 시스템에는 전국 650만 채의 건물에 대한 기초 데이터가 입력돼 있으며 전체 인구는 4859만 명으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11억 원을 들여 8개월 동안 개발한 이 시스템은 아직 보완이 필요해 정확한 예측이라기보다는 내부 참고용일 뿐이라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시스템 자문에 응했던 한 민간 전문가는 “평창동 지진 시뮬레이션 피해 결과는 상당히 과도하게 나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장승필(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제대로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가옥의 분포와 건물의 취약성뿐 아니라 소방서 위치까지 정밀하게 입력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엄청난 예산과 노력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서울대 지진공학센터가 서울시와 함께 1999년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 강남역에서 27.3km 떨어진 남한산성 부근에서 리히터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강남역 주변 1km² 이내의 건물 피해 상황을 예상한 연구였다.

서기 89년 남한산성 부근에서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착안해 설정한 상황이었다. 저층 벽돌 건물의 20∼30%가 반파 이상의 피해를 봤지만 아파트는 10% 정도 피해를 본 것으로 나왔다. 이 조사는 좁은 지역에서 이뤄져 직접 건물의 실태 조사까지 해 더 정밀한 조사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실험은 인명 피해는 제외했다.

▽국가 내진(耐震) 목표, 숫자로 설정해야=피해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지진은 리히터 규모 5.0 이상이다. 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파손되는 등의 비구조적 피해가 건물이 무너지는 구조적 피해로 넘어가는 경계다.

소방방재청 정길호 연구관은 “리히터 규모가 1.0이 높아지면 지진의 힘은 32배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리히터 규모 6.0의 지진은 5.0에 비해 파괴력이 32배 세다는 것.

국내의 지진에 대한 대비는 취약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서울대 지진공학센터 소장인 김재관 교수는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할 정도.

정부는 1988년부터 6층 이상 건물에 대한 내진 설계를 의무화했다. 1992년에는 도로와 교량으로, 2005년에는 3층 이상 건물로 확대했다. 하지만 건설교통부 자료로도 6층 이상 건축물의 60%와 교량, 터널 등 주요 교통 시설의 27% 이상이 내진 설계가 안 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서류상으로 내진 설계가 됐다는 건물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진설계 기준이 지진의 하중을 고려한 정도일 뿐 철근 배근 등 건물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는 것.

김 교수는 “이번 지진을 국가적인 지진 대응 능력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평창 지진 발생 직후 5분 내에 하도록 돼 있는 방송사에 대한 통보 시점이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한명숙 국무총리는 22일 “(매뉴얼보다) 30초 늦었다”고 이를 시인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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