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그들만의 세상을 본다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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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세포 나타낸 뇌지도 세밀할수록 더 잘 봐

동물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봤다.

쥐의 눈에 비치는 사물은 윤곽도, 원근감이나 입체감도 뚜렷하지 않다. 고양이는 쥐보다 더 뚜렷하게 사물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 눈에 비친 세상은 흑백이다. 원숭이의 시각은 고양이보다 한 수 위. 사물의 윤곽과 원근감, 입체감뿐 아니라 색깔까지 인지할 수 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뇌지도’ 덕분이다.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세포들은 뇌 속에 아무렇게나 분포하는 게 아니라 각도, 거리, 방향, 색깔 등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것끼리 모여 있다.

이 때문에 뇌의 시각정보 처리영역을 첨단 영상장비로 찍어 보면 풍차나 지문 모양 등 동물마다 독특한 무늬가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이를 뇌지도라고 부른다. 뇌지도의 무늬가 뚜렷하고 세밀할수록 특정한 시각 기능이 더 발달한 것이다.

● 설치류에겐 각도-양안 뇌지도 아예 없어

고양이는 풍차 무늬를 띠는 ‘각도 뇌지도’를 갖고 있다. 각도를 얼마나 잘 인식하느냐는 사물의 윤곽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쥐 같은 설치류에서는 각도 뇌지도가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사물의 원근감이나 입체감을 잘 인지하려면 지문 무늬의 ‘양안(兩眼) 뇌지도’가 있어야 한다. 뇌가 양쪽 눈이 받아들이는 시각정보의 차이를 분석해야 원근감 또는 입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고양이 뇌에는 양안 뇌지도가 있다. 하지만 쥐는 없다. 쥐가 발밑에 깔려 있는 작은 가시를 제대로 보지 못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다.

시각 능력은 원숭이가 고양이보다 월등할 것으로 보인다. 각도나 양안 뇌지도가 훨씬 정교하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깊이나 색깔 등 다른 세부 시각 기능의 뇌지도도 갖고 있다. 또 뇌지도의 면적도 고양이나 쥐에 비해 훨씬 넓다. 원숭이나 사람의 경우 시각 관련 뇌지도가 족히 수십 개는 있을 거라는 게 과학자들의 추측이다.

● 감각상실 환자 재활치료에 활용 기대

뇌지도는 동물이 태어나 시각 경험을 하면서 서서히 발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센터 정수영 박사는 “특정 감각에 의존해 생존할수록 그 감각을 정확히 인지하기 위해 신경세포가 세밀하게 기능을 구분하면서 지도가 발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쥐는 시각 뇌지도 대신 청각 뇌지도가 발달했다. 어두운 동굴 속에 사는 박쥐는 시각보다 청각에 더 의존했을 터. 초음파를 비롯해 아주 미세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청각 신경세포들이 기능을 세분화했기 때문에 뇌에 정교한 무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감각 뇌지도의 발달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사고로 감각을 잃어버린 환자의 재활치료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박사는 “다른 사람의 뒤통수만 봐도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는 이유도 뇌지도와 관계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뇌지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이 처리하는 감각 정보를 상위 단계의 신경세포가 조합하는데, 상위 단계의 세포가 뒤통수의 윤곽이나 입체감 등 뇌지도가 제공하는 정보를 모아 이미 갖고 있던 기억과 비교해 누구라고 결론 내린다는 얘기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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