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 희망만 있어도… 암! 사형선고 아닙니다

  • 입력 2006년 9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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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산부인과 의사 김대중 박사(왼쪽)와 홍영재 산부인과병원 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이날 강연회 자리에서 대장암 진단 시기도 서로 같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진 제공 세브란스병원
21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산부인과 의사 김대중 박사(왼쪽)와 홍영재 산부인과병원 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이날 강연회 자리에서 대장암 진단 시기도 서로 같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진 제공 세브란스병원
《21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6층 은명대강당. 링거주사를 팔에 꽂은 환자 등 800여 명이 강당과 복도를 빼곡히 채웠다. 이들은 두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홍영재산부인과병원 홍영재(63) 원장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래라 밸리 메디컬센터 산부인과 의사 김대중(59) 박사였다. 이들은 의사로서가 아니라 대장암을 이겨낸 환자로서 강단에 섰다. 대장암은 국내 암 발생률 남성 4위, 여성 3위다. 의사들은 대개 자신의 병력을 밝히는 것을 꺼리지만 이들은 암 환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나섰다. 》

대장암 환자와 가족을 위한 건강강좌에서 연세대 의대 동문인 이들은 ‘일 중독자’로 살아온 인생살이부터 털어놓았다. 환자들은 이들이 담담하게 자신의 투병기를 한 대목씩 풀어 갈 때마다 박수를 치며 공감했다.

홍 원장은 바쁠 땐 한 달에 아기를100여 명가량 받기도 했다. 김 박사도 미국에서 오전 7시 반부터 매일 12시간씩 수술과 분만에 매달렸다.

두 사람에게 병마가 닥친 것은 5년 전 이맘때. 홍 원장은 주말에 친구들과 강화도에 놀러갔다가 갑자기 아랫배에 뭔가 막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튿날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 결과 대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신장에서도 암 덩어리가 발견돼 기껏해야 수명이 2,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땐 하늘이 노랬다. 절망감에 빠진 그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나에게 벌을 내린 하늘을 원망하며 유서를 써 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도 늘 피곤한 나날을 보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몸무게가 5kg이나 줄고 변이 자주 마렵자 병원에 몸을 맡겼다. 직장 내시경검사 결과 말기(4기)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간에까지 암이 전이된 상황이었다.

이들은 “의사지만 환자로서의 절망과 좌절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사다웠다.

홍 원장은 미국에서 치료를 받으라는 다른 의사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모교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고집했다.

“한국의 위암, 대장암 수술 수준은 세계적이어서 굳이 외국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병을 고치는 데는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최고다. 나를 가장 잘 아는 후배 의사를 믿고 의지하기로 했다.”

홍 원장은 수술 이후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입 안이 헐고 몸무게가 줄자 담당 의사는 항암제 용량을 줄일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항암제 기준 용량을 고집했다. 그는 “항암제를 4번째 맞은 뒤 도망가고 싶었지만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의사에게서 치료 시기가 늦었으니 여행이나 다니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는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싶었다. 일단 여러 의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메디컬센터, 듀크대 메디컬센터 등지를 돌아다녔지만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뉴욕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그는 이곳에서 완치 가능성에 대해 듣고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암 치료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 여러 병원을 찾아 의사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다.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검증된 치료만 받아야 한다. 다른 치료법에 눈을 돌리는 순간 시간은 물론 육체를 낭비하게 된다.”

두 사람은 발병 이후 의학계에서 완치됐다고 보는 5년을 며칠 앞두고 있다. 이들은 암 발병 이전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의사로서 계속 일하고 있다.

이들의 일상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장 많이 변한 게 식습관이다. 두 사람은 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는 무엇보다 ‘먹을거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홍 원장은 하루 한두 끼는 꼭 청국장을 먹을 정도로 청국장 예찬론자가 됐다. 그는 아예 서울 강남지역에 청국장 전문 식당을 열기도 했다. 김 박사는 기름진 음식과 붉은색 고기를 먹지 않고 야채 주스와 과일, 달걀흰자, 샐러드, 닭 가슴살, 잡곡밥을 주로 먹는다.

두 사람은 “환자가 되고 나서야 의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투병 체험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새로운 사명감을 가져다 준 기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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