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癌 초기에 잡자]<9>소아 백혈병

  • 입력 2006년 6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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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군이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암전문클리닉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위). 김 군의 엉덩이뼈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골수를 뽑아 검사하고 있다(아래). 원안은 김 군의 혈액에서 뽑은 백혈병 세포 모습.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사진 제공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 군이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암전문클리닉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위). 김 군의 엉덩이뼈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골수를 뽑아 검사하고 있다(아래). 원안은 김 군의 혈액에서 뽑은 백혈병 세포 모습.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사진 제공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열이 심하고 기침을 해서 감기가 좀 심한 줄만 알았는데….”

김영철(가명·11·경기 광명시) 군의 어머니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동네 종합병원에서 검사한 김 군의 혈액 수치는 너무나 비정상이었다. 면역세포인 백혈구 수치가 정상인에 비해 11배 이상 높은 13만2000으로 나왔다. 그 동안 동네 소아과에서는 감기와 약한 폐렴이 있는 것 같다며 약을 주었지만 신통치가 않았다. 김 군의 부모는 보름 넘게 감기 치료에만 매달렸다.

혈액검사결과에 깜짝 놀란 어머니는 10일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암전문클리닉 유철주 교수를 찾았다. 2003년 동아일보 베스트닥터 혈액질환 명의에 선정된 바 있는 유 교수는 700명이 넘는 소아암 환우회인 ‘한빛사랑회’를 결성해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여름 캠프와 모임을 수시로 열고 있다.

태권도와 축구 등 운동을 좋아하는 김 군은 최근 몸무게가 4kg이나 줄었다. 고열 때문에 해열제를 복용했지만 그것도 잠시. 약 기운이 떨어지면 열이 39.5도나 올라 다시 김 군을 괴롭혔다. 최근에 토하기까지 해서 음식도 제대로 못 먹었다. 또 탈수 때문인지 피부가 건조하고 많이 거칠어졌다.

“다시 혈액검사를 한 결과에서도 백혈구 수치가 13만6000이 나왔네요. 백혈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유 교수)

백혈구의 수치가 이렇게 높으면 99%가 백혈병 진단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김 군의 몸 주위를 여기저기 살피고 만지면서 다른 곳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봤다. 백혈병일 때 목이나 사타구니의 림프샘(임파선)이 커져 덩어리 같이 만져 질 수 있다. 또 간이나 비장이 커져서 배가 불룩하게 나올 수도 있다고 유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군은 아직 림프샘이 붓거나 간이나 비장이 부어 있지는 않았다.

“너무 늦게 병원에 데려 온 것은 아닌지요.”(김 군의 어머니)

“물론 빨리 데려와서 진단내리는 것이 좋겠지만 초기에 알기가 힘든 것이 백혈병이에요. 백혈병은 다른 암과 달리 1기, 2기, 3기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늦게 온다고 해서 치료방법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유 교수)

“혹시 이것이 유전되는 암은 아닌가요. 시댁에서 이런 병을 앓은 사람이 있었는데….”(김 군의 어머니)

“백혈병은 유전이 아니에요. 또 원인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 뚜렷한 예방법은 없어요. 다만 히로시마 원폭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백혈병이 증가했어요. 또 벤젠이라는 화학물질에 오랫동안 노출돼도 이 병이 증가합니다. 근래엔 전자파나 고압선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논란 중입니다.”

김 군의 어머니는 시골서 가져온 유기농 농산물만 먹일 정도였는데 무엇인가 자신이 제대로 아들을 챙기지 못해 병이 난 것이 아닌지 자책했다. 그러나 백혈병을 포함한 소아암은 인종과 국가와 관련 없이 인구 10만 명당 15명 정도로 발생하는 것으로 부모 탓이 아니라고 유 교수는 어머니를 진정시켰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에 단골로 등장하는 백혈병은 혈액 또는 골수에 암세포가 생기는 병이다. 백혈병은 암세포의 종류에 따라 림프구성과 골수구성으로 나뉘며 병의 진행 속도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세분화된다.

혈액은 뼛속의 그물망 모습의 골수에서 만들어지는데 이곳에 암세포가 가득 채워지면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등이 정상적으로 나오지 못해 빈혈과 출혈 등이 생긴다.

백혈병은 뼛속에서 생기는 특성으로 인해 조기 진단이 어렵다. 이 때문에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으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날 오후 입원한 김 군은 골수검사를 받았다. 골수는 뼛속에 들어 있는 조직으로 피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골수검사를 통해 김 군의 백혈병이 림프구성인지 골수구성인지 판정하는 한편 백혈병 세포의 정확한 수치의 재확인 및 유전자 검사를 시행한다.

이 검사는 엉덩이뼈에 굵은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골수를 뽑기 때문에 통증이 심하다. 소아의 경우 전신 마취를 시행하지만 김 군은 몸 상태가 안 좋아 부분 마취만 했다.

검사실 밖 김 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나 오진이었기를 기원했다. 손에 쥔 묵주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전문가 진단 ▼

김 군은 골수검사에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최종 진단됐다. 또 백혈병 세포의 유전자 검사에서 22번 염색체의 일부가 9번 염색체에 붙어 길어지는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나왔다. 주로 성인 백혈병환자에게서 보이는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소아에겐 예후가 좋지 못하다. 김 군은 몇 차례의 항암치료를 통해 몸속 백혈병 세포를 완전히 없앤 뒤 골수 이식을 받을 예정이다. 안타깝게 김 군은 누나와 조직 적합성이 떨어져 골수 기증자를 찾아야 한다. 현재 1차 항암치료를 통해 14만에 가깝던 김 군의 백혈구 수치는 ‘360’으로 현저히 떨어졌다.

백혈병은 2004년 현재 암으로 인한 국내 사망 원인 9위이며 전체 소아암에서는 1위다.

소아 백혈병의 증상은 대부분은 천천히 지속적으로 생긴다. 처음에는 감기와 비슷한 고열과 잦은 피로감, 숨이 찬 증세를 반복해 보일 수 있다. 이후에는 멍이 쉽게 들고 코피가 자주 나고 작은 상처에도 피가 잘 멎지 않는다. 또 입안이 잘 헐고 목이나 사타구니에 덩어리가 만져지며 뼈나 관절이 아프다고 아이가 호소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가 어떻게 아프다고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므로 부모는 증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야 한다. 고열이 1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전에 없던 위의 증상들이 나타나면 가까운 소아과를 찾아 상담하고 필요한 경우 혈액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치료는 항암치료를 주로 하게 되며 최근엔 염색체 검사를 통해 환자별 맞춤치료법을 해서 소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경우 80%에 이르는 완치율을 보이고 있다.

항암치료 기간에 부모들은 아이의 면역력이 매우 떨어져 있음을 항시 주지하고 감염에 주의해야 한다. 감기를 비롯해 외상 등을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소아 백혈병은 치료가 잘 되는 병이다. 완치된 아이는 일반인과 비슷한 수명을 갖는 미래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하다.

유철주 교수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암전문클리닉

다음 순서는 갑상샘(갑상선)암 입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 분은 e메일(health@donga.com)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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