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워진 땅 수증기 구멍 생겨 빗물에 취약
USGS가 발표한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산불이 일어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산사태가 일어날 확률이 80%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산불로 수목이 불탔기 때문에 산사태가 잘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산불이 나면 핵심부는 섭씨 1200도까지 올라간다. 불이 땅을 데우면 땅속에 들어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수증기가 통과할 구멍이 만들어진다. 산불 지역의 흙이 푸석푸석해지는 까닭은 바로 흙 속 수분이 빠져나간 뒤 입자 사이의 빈 공간이 커졌기 때문이다. 산불은 땅 위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뿐 아니라 땅의 성질마저 순식간에 바꿔 버린다.
이런 지역에 시간당 강우량이 수백 mm인 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리면 약화된 토양이 빗물을 머금으면서 쓸려 내려갈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대한지질공학회 김원영(지질연 책임연구원)회장은 “지난해 큰 불이 발생한 강원도 양양 지역을 조사한 결과 평균 20cm 깊이까지 토질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며 “산불 피해 지역의 산사태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마침 지난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 산사태가 일어난 강원도 사천 지역도 2000년 대형 산불이 일어난 지역이어서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
○암석층 많고 집중호우 때 ‘확률’ 높아져
|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대로 나무가 많은 지역과 야트막한 산은 산사태로부터 안전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질연 연구팀은 2000년부터 국내에서 발생하는 산사태의 원인을 조사했다. 산사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시간당 강우량이 수백 mm에 이르는 집중호우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과 안성시 일대를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250∼300mm 내외의 집중호우가 내릴 때 산사태 발생 빈도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산사태 발생 확률이 높은 지형과 땅의 특성도 밝혀냈다. 조사 결과 땅속 바로 아래 단단한 암석층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산은 산사태가 잘 일어날 수밖에 없는 지형. 암석층 위에 흙이 1m 안팎만 쌓여 있어 큰비라도 내리면 빗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암석층과 흙층 사이에 미끄럼이 발생한다. 빗물이 땅속 암석층과 흙 사이로 흐르면서 그 위 흙은 그대로 미끄러져 내린다.
특히 이런 현상은 급경사지가 아닌 30도 전후의 완만한 지형에서 잘 일어난다. 45도 이상의 급경사에는 평소에 아예 쌓이지 않아 흘러내릴 흙이 없고 20도 미만의 야트막한 구릉에서는 흙이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복구공사도 산사태 재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질연 산사태재해연구팀장 채병곤 박사는 “산사태는 불안정한 땅이 무너져 내리면서 안정을 찾는 과정인데 복구라는 명목 아래 다시 땅을 깎아내면 다시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 박사는 또 “산사태가 일어난 지역에 산을 뒤로 지고 마당을 앞에 두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 가옥이나 건물을 짓게 되면 또 다시 산사태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