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먼지는 너무 불결해 콜록” …반도체는 ‘깔끔공주’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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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황사가 처음 몰려온 11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삼성SDI 중앙연구소에 ‘황사주의보’가 발령됐다. PDP, LCD 등 첨단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있는 이 연구소는 즉시 황사 종합대책반을 가동하고 사내 방송을 시작했다. 연구소는 서둘러 연구가 이뤄지는 클린룸 안으로 공기를 공급하는 급기구 필터를 모두 교체했다. 클린룸에 들어가기 전 해야 하는 공기목욕(에어샤워) 시간도 평소보다 2배 이상 늘렸다. 연구소 직원들은 이날 온종일 ‘먼지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해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먼지바람에 기업들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 수백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수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크기 먼지입자는 전자 정밀기계 자동차 등 여러 산업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한국에서 황사 기간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먼지의 지름은 1∼10μm.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특히 먼지에 민감한 분야다. 생산라인에 먼지가 유입되면 불량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도체 생산라인의 청정도를 뜻하는 ‘클래스1’은 가로 세로 높이 30cm 공간에 0.1μm 먼지입자 1개만을 허용한다. 넓이로 환산하면 여의도 6개를 합친 면적에 500원짜리 동전 1개 크기만 한 먼지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높은 청정도를 유지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라인에 들어갈 때는 눈만 남겨둔 채 머리와 손, 발을 모두 가리는 방진복을 입고 센 바람으로 먼지를 털어내는 에어샤워를 해야만 한다. 또 클린룸 안과 밖에 기압 차이를 두거나 3, 4중 필터를 설치해 공기에 섞인 먼지가 내부로 흘러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황사 때는 평소보다 먼지 농도가 최대 30배까지 급격히 증가한다. 생산라인으로 먼지가 유입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황사로 인해 산업에 피해를 보는 사례는 여러 차례 보고됐다. 2004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작성한 ‘황사피해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황사 대비가 전무했던 1995년 TV브라운관의 불량률이 평소보다 70∼80%까지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2002년에도 TV브라운관의 경우 평소 1%인 불량률이 황사 때면 1.5%로, 정밀기기는 3%에서 5%로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황사주의보가 발령되면 먼지를 걸러내는 필터 교체 주기를 줄이고 생산라인에 에어샤워 시간을 늘리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SDI는 평균 1, 2개월꼴인 필터 교체 주기를 황사 기간에는 1일로 줄이고 15초이던 에어샤워 시간을 30초로 늘렸다. 삼성전자반도체총괄도 생산라인 주변을 4중 필터로 보호하고 있다. 특히 생산라인 가장 안쪽에 설치되는 울파필터(ULPA)는 지름 0.1μm의 먼지를 99.99%까지 잡아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체들은 0.1μm(100nm)보다 작은 먼지에 대비해 일부 반도체 핵심공정에 ‘멤브레인’이라는 값비싼 특수막(膜)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선폭이 수십 nm이하로 내려가면서 나노 먼지입자의 위협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황사는 항공기나 자동차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강자영 교수는 “기체나 차체가 짙은 먼지 구름을 통과할 때 엔진뿐 아니라 항법장치 같은 정밀 전자부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상연구소 전영신 연구원은 “황사의 진원지가 최근 황허 상류에서 네이멍구, 만주 지방 등 한반도와 매우 가까워지고 있어 대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황사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황사에 대한 국내 기업의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2003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국내 관련 기업 122개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황사대책이 필요하다고 답한 기업이 57.4%였으나, 관련시설에 투자할 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이 82.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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