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될 냉동배아 이용 줄기세포 배양, 세계 첫 美 특허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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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치료를 위해 쓴 뒤 남아 버려지는 냉동 배반포기배아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국내 연구팀의 기술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특허를 획득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朴世必·사진) 박사팀은 냉동 배반포기배아를 이용해 인간 배아줄기세포주를 만드는 기술이 올해 7월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특허 획득은 박 박사팀이 2001년 8월 국내 및 국제 특허 출원을 신청한 뒤 4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한국 특허청은 아직 이 기술에 대해 특허를 내주지 않았다.

배아줄기세포 관련 미국 특허는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과 호주-싱가포르 공동 연구팀이 각각 초기 냉동배아 및 신선배아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든 것이 있으며 이번이 3번째다. 그러나 수정 후 4, 5일이 지난 냉동 배반포기배아를 이용한 기술로는 세계 최초다.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교수팀도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주 확립 방법에 대해 지난해 미국에 특허 신청을 했으나 심사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아직 특허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수정된 지 5년이 지나 폐기 처분될 냉동 잔여 배반포기배아를 활용한 것이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발효된 생명윤리법은 불임치료 목적으로 냉동 보관시켰다 5년이 지난 잔여 배아에 한해 환자의 동의를 받아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구팀이 이번에 획득한 특허에는 배아줄기세포 분리 과정에 사용되는 해동기술과 체외배양시스템, 특수 항인간항체(AHLS)를 사용한 면역절제술 등 10여 개의 세부기술이 포함돼 있다.

박 박사는 “배아 손실률을 낮추고 배아줄기세포 확립 성공률을 기존보다 5배 이상 끌어올린 점이 특허를 받은 기술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특허 획득은 배아줄기세포 분야의 원천기술을 독점 확보한 것인 만큼 이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단계에 진입하면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박사팀은 7월 미국에서 특허를 획득했으나 관례에 따라 특허증이 한국에 교부될 때까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냉동 잔여 배반포기(胚盤胞期)배아:

배반포기배아는 수정된 지 4, 5일 된 배아를 말한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 사용되지 않고 냉동 상태로 5년 이상 보관한 것을 냉동잔여 배반포기배아라고 한다. 내부 세포 덩어리만 떼어내 배양하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생명파괴 논란 벗어나 난치병 치료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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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팀이 수정 뒤 4, 5일째 되는 수정란인 냉동 잔여 배반포기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로 미국 특허를 획득한 것은 국내 줄기세포 연구의 앞선 기술력을 세계무대에서 또 한번 인정받은 일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려는 미국의 대학이나 제약회사로부터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또 사람의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인간배아복제보다 윤리적인 문제를 줄인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특히 생명윤리법 시행에 따라 처음으로 ‘냉동 잔여 배아’를 택한 배아연구 과제를 정부가 승인한 이후 이번에 미국 특허까지 획득함으로써 앞으로 냉동 잔여 배아를 이용한 후속 연구가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박 박사팀이 사용한 냉동 잔여 배아줄기세포는 시험관 아기를 낳을 때 남게 되는 여분의 수정란이다. 보통 시험관 아기의 성공률은 30% 정도이므로 의료진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여분의 수정란을 냉동 보관해 둔다. 따라서 불임 여성이 아기를 가진 뒤에도 수정란은 그대로 냉동 보관되는 것.

이렇게 국내에 보관 중인 냉동배아는 5만여 개. 배아는 생식 목적으로 냉동 보관하지만 실제로 생식에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박 박사팀의 설명이다.

박 박사팀이 특허 받은 기술은 배아줄기 세포를 만드는 성공률을 기존의 10∼36%보다 높은 63%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냉동 잔여 배아에서 만든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할 때 면역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박 박사는 “이 기술을 응용하면 심근경색, 뇌중풍(뇌졸중), 파킨슨병 등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며 “현재 척수신경이 손상되거나 뇌중풍에 걸린 동물에 대한 실험에서는 치료 성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스타’인 황 교수보다 먼저 미국 특허를 획득한 박 박사는 1983년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해 온 인물.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는 의원급으로는 국내 첫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불임치료 전문 마리아병원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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