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檢 도입 뇌파측정 원리…뇌파는 참과 거짓을 증언한다

  • 입력 2004년 10월 5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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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과학수사과가 최근 도입해 수사에 활용하기 시작한 뇌파분석장치의 시연회 모습. 모니터에 등장한 칼이 범행도구였다면 이를 본 범인의 뇌에서는 특정 뇌파인 ‘p300’이 나오게 된다. -변영욱기자
대검 과학수사과가 최근 도입해 수사에 활용하기 시작한 뇌파분석장치의 시연회 모습. 모니터에 등장한 칼이 범행도구였다면 이를 본 범인의 뇌에서는 특정 뇌파인 ‘p300’이 나오게 된다. -변영욱기자
《2003년 미국 MSNBC 방송이 선정한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없어져야 할 10대 과학기술 중 하나. 2001년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자국 내 5대 발명품 중 하나. 이처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주인공은 바로 ‘거짓말 탐지기’이다. 최근 대검찰청이 첨단 뇌파 분석 장비를 도입해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는 범인을 색출하는 데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폴리그래프 vs 뇌파분석기=진실을 감춰야 하는 상황이 오면 온몸에는 ‘비상 신호’가 켜진다. 두뇌는 순식간에 특정 뇌파를 쏟아내고 5∼10초 후에 심장박동은 평소보다 빨라지며 혈압도 높아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입을 가리거나 다리를 꼬는 방어적 행동도 무심결에 나온다.

혈압 맥박 호흡 땀 등 생리적 변화를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인 폴리그래프다. 이런 생리적 변화는 자율신경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위와 장의 운동처럼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난다. 현재 폴리그래프는 미국에서 연방수사국(FBI)의 범죄 수사는 물론 국립연구소의 직원 채용에도 활용되고 있다.

거짓말이나 범행은 뇌의 활동이 가져온 결과다. 그 사람의 뇌로 직접 들어가면 거짓말 여부, 범행에 얽힌 정보 등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로렌스 파웰 박사는 1991년 p300이라는 특정 뇌파를 측정해 거짓말이나 범행 관련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대검이 도입한 첨단 장비도 이를 이용한 것.

뇌는 사진 글자 소리 등의 자극에 두 종류의 뇌파를 내보낸다. 누구의 뇌에서나 자극이 주어진 후 50ms(밀리초, 1ms=1000분의 1초)에서 100ms 이내에 1차적으로 ‘순수 유발 뇌파’가 나온다. 이어서 이 자극이 특별하게 자신과 관련된 것이라면 300∼400ms 사이에 p300이라는 ‘사건 관련 뇌파’가 뜨게 된다.

대검 과학수사과의 김종률 검사는 “범행과 관계없는 칼에는 반응이 없다가 범행에 사용된 칼을 보는 순간 뇌에서 무심코 p300이 뜬다”고 말했다. 범인의 뇌 안에 있던 범행 정보가 자신도 모르게 누설되는 것.

▽뇌파로 테러범 색출도=김 검사는 “뇌파분석기는 테러범이나 유괴범을 찾아내는 데도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테러용의자의 머리에 10여개의 미세 전극을 붙인 후 여러 정보를 차례로 제시한다고 하자. 테러와 무관한 정보(표준자극)를 계속 보다가 알 카에다만이 아는 용어(목표자극)를 만났을 때 테러범의 뇌에서는 p300이 뜬다. 반면 보통 사람의 뇌에서는 p300이 뜨지 않는다. 뇌파분석기는 사람이 무심코 주의 집중함으로써 생기는 p300을 잡아내는 것.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김현택 교수는 “사건과 관계없는 표준자극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비슷한 칼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화려한 칼이 등장하면 사람의 뇌에서 p300이 뜰 수도 있다”고 밝혔다. 꼭 범행도구가 아니더라도 특별한 물체에 반응해 p300이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검사는 “사건 현장에서 볼 때 용의자가 이런 자극에 반응해 뇌에서 p300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반박했다.

또 가능하면 사건 초기에 뇌파를 분석하는 게 좋다. 여러 수사를 거치면서 용의자가 범죄 관련 사항에 많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의자 자신이 범행 현장에서 어떤 흉기가 사용됐는지 미리 알게 된다면 뇌파 분석으로 범인을 잡는다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거짓말할 때 뇌 반응은=사실 현재의 뇌파분석기는 거짓말을 잡아낸다기보다 자신과 밀접하게 관계된 것을 접할 때 나오는 p300이란 특정 뇌파를 탐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짓말할 때 나오는 뇌파 연구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레이 존슨 주니어 교수팀이 거짓말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반응하는지에 대해 2001년부터 3년간 연구해 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정재승 교수는 “예를 들어 범인이 죽인 여자의 사진을 보고 거짓말할 때 고등정보처리 영역 중 하나인 전두대상피질에서 뇌파가 대폭 증가된다”며 “남을 속이려면 복잡한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속이는 과정을 측정해 차세대 거짓말 탐지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거짓말 탐지기’도 지능화되는 범행 수법에 맞춰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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