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편견을 넘자]<2>공격적 아이, 부모가 만든다

  • 입력 2004년 2월 22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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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정신장애는 환경적 요인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어른들의 폭력과 무관심, 가정 불화, 교우관계, 과도한 공부 등이 주요 원인이다.

엄마가 산후 우울증에 걸리면 딸도 산후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는 유전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변 환경이 아이들을 정신장애자로 만든다는 얘기다. 이혼 가정의 자녀일수록 충동조절장애자가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이들은 현재 정신장애의 최대 피해자다. 그러나 방치하면 미래의 가해자가 돼 정신장애의 악순환은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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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엿보기=K군(10)은 5세 때 부모가 이혼한 뒤 말이 없어졌으며 하루 종일 TV와 컴퓨터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TV 시청을 막자 K군은 “죽여 버릴 거야”라며 폭력성을 보였다. K군은 지능지수가 135로 영리한 편이었지만 학교에서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상담과 약물치료를 함께 받아 요즘은 많이 안정되고 말수도 늘었다.

P군(11)의 경우 아빠의 잦은 폭력이 문제였다. 작은 실수에도 폭언과 손찌검은 예사였으며 말리는 엄마에게도 주먹이 날아갔다.

P군은 매사에 의욕이 없고 말수가 없다. P군의 동생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ADHD) 장애로 정상적인 학습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자주 때렸으며 인형의 눈을 뜯어내는 극단적인 공격성도 보였다. 아빠의 폭력이 원인이기 때문에 의사가 그를 진료실로 불렀지만 거부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다. P군의 동생은 지금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어른의 무지가 문제다=지난해 한양대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서울 성동구 등 전국 14개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6% 정도가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교사가 이들에 대해 심각하다고 인식한 비율은 이 중의 절반에 불과했으며 부모에게 치료를 권한 경우는 더 낮아 전체의 25%에 불과했다.

2001년 발간된 미국 정신건강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 진단이 내려진 비율은 전체 어린이의 28% 정도. 그러나 치료를 받는 경우는 8%에 불과했다. 의료 선진국이 이 정도면 국내는 어떨까. 의사들은 방치되는 어린이 환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징후를 포착하라=어린이들은 아직 성장기이므로 병명을 내리기 힘들다. 아이들 자신도 정신장애자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만 4세나, 늦어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대뇌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기다. 그러나 이 무렵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뇌 가장자리계(변연계)의 발달이 지연되거나 비정상적으로 왜곡된다. 정신장애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경우 나타나는 징후를 보면 우선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한다. 특히 긍정적 감정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참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짜증을 내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는다. 집중력도 떨어진다. 심하면 ‘나는 보잘 것 없어’ 하는 식으로 자아상(像)을 왜곡한다.

(도움말=한양대병원 소아정신과 안동현 교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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