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에 이어 8일 열린 정보통신부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통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휴대전화 도·감청을 방지하기 위한 비화 칩을 개발해왔다”는 증언이 나오자 정부 차원에서 도·감청을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더욱 힘을 받게 됐다.
▽비화 기술 개발 어디까지 왔나=정통부는 이날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비화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해왔으며 비화 휴대전화의 지자체 보급 계획은 보류했다”고 보고하면서 정통부가 예산을 지원한 사업에 대한 연구 과제와 명칭 및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보안을 이유로 함구했다. 다만 “비화 휴대전화를 지급할 경우 도·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정부 입장을 번복해야하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정통부측은 ‘개연성’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진(朴振·한나라당) 의원은 “2001년 12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기술인 IMT-2000 휴대전화 단말기 경우에도 도·감청 방지를 위해 암호화된 별도 칩을 제작해서 실험한 적이 있다”며 “정통부는 이 연구 결과와 비화 칩간의 연관성을 밝히라”고 추궁했다. 이에 정통부측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날 권영세(權寧世·한나라당) 의원은 “비화 칩은 휴대전화에 부착하는 외장형으로 100여대 정도가 시험 생산된 것으로 안다”며 “비화 칩 내장형 휴대전화는 칩과 휴대전화를 동시에 생산해야하기 때문에 생산업체가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도·감청의 ‘몸통’?=정통부는 이날 비화 휴대전화 지자체 보급 보류 결정과 관련, “국정원과 상의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비화 기술 개발에 어느 정도 간여하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기정위 소속 의원은 “정통부가 국정원과 상의하겠다고 밝힌 것을 듣고 ‘결국 국정원이었구나’하고 생각했다”며 “미국에서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 기술 보유사인 퀄컴사가 미국 연방정부와 중앙정보국(CIA) 등에 비화 휴대전화를 보급하고 있다. 이 문제에 국정원이 관련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도·감청 전문업체 사장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휴대전화 사업이 국가 주력사업인 만큼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휴대전화 도·감청에 간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외국 정보기관은 이미 영국과 이스라엘 등 ‘보안 선진국’에서 각종 도·감청 장비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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