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도감청 은폐 의혹’…정통부 비화칩 개발 시인

  • 입력 2003년 10월 8일 2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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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도·감청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6일에 이어 8일 열린 정보통신부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통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휴대전화 도·감청을 방지하기 위한 비화 칩을 개발해왔다”는 증언이 나오자 정부 차원에서 도·감청을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더욱 힘을 받게 됐다.

▽비화 기술 개발 어디까지 왔나=정통부는 이날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비화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해왔으며 비화 휴대전화의 지자체 보급 계획은 보류했다”고 보고하면서 정통부가 예산을 지원한 사업에 대한 연구 과제와 명칭 및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보안을 이유로 함구했다. 다만 “비화 휴대전화를 지급할 경우 도·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정부 입장을 번복해야하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정통부측은 ‘개연성’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진(朴振·한나라당) 의원은 “2001년 12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기술인 IMT-2000 휴대전화 단말기 경우에도 도·감청 방지를 위해 암호화된 별도 칩을 제작해서 실험한 적이 있다”며 “정통부는 이 연구 결과와 비화 칩간의 연관성을 밝히라”고 추궁했다. 이에 정통부측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날 권영세(權寧世·한나라당) 의원은 “비화 칩은 휴대전화에 부착하는 외장형으로 100여대 정도가 시험 생산된 것으로 안다”며 “비화 칩 내장형 휴대전화는 칩과 휴대전화를 동시에 생산해야하기 때문에 생산업체가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도·감청의 ‘몸통’?=정통부는 이날 비화 휴대전화 지자체 보급 보류 결정과 관련, “국정원과 상의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비화 기술 개발에 어느 정도 간여하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기정위 소속 의원은 “정통부가 국정원과 상의하겠다고 밝힌 것을 듣고 ‘결국 국정원이었구나’하고 생각했다”며 “미국에서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 기술 보유사인 퀄컴사가 미국 연방정부와 중앙정보국(CIA) 등에 비화 휴대전화를 보급하고 있다. 이 문제에 국정원이 관련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도·감청 전문업체 사장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휴대전화 사업이 국가 주력사업인 만큼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휴대전화 도·감청에 간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외국 정보기관은 이미 영국과 이스라엘 등 ‘보안 선진국’에서 각종 도·감청 장비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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