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의 침묵도 金?…사건직후 설명땐 ‘시각기억’ 왜곡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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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현장에 있던 증인은 사건 직후 경찰에 불려가 범인의 얼굴을 설명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범인의 얼굴을 말로 설명하다 보면 오히려 얼굴에 대한 기억이 퇴화한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미국 피츠버그대 심리학자 조너선 스쿨러 교수는 ‘언어로 인한 시각 기억의 퇴화’가 심각하기 때문에 경찰이 증인을 심문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응용인지심리학회지’를 통해 밝혔다. 증인의 기억을 오래 보존하려면 증인을 가만히 놔둬야 한다는 것.

스쿨러 교수는 강도가 은행을 터는 비디오를 실험 대상자에게 보여 주었다. 그 뒤 대상자 중 절반은 강도의 얼굴을 말로 묘사하는 일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쉬었다. 이어 실험 대상자에게 8개의 얼굴 사진을 주고 강도를 찾게 했다. 그 결과 쉰 사람은 전체의 3분의 2가 강도의 얼굴을 맞힌 반면 얼굴을 묘사해야 했던 사람은 3분의 1만이 강도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스쿨러 교수는 “무의식적으로 포착한 얼굴을 의식적 활동을 통해 말로 설명하다가 보면 오히려 기억이 혼란스러워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스쿨러 교수는 같은 방법으로 실험 대상자에게 지도를 보여 주고 실험을 한 결과 지도를 말로 묘사한 사람은 기억이 감퇴하지 않았다. 지도상의 길 찾기는 “다음 블록에서 왼쪽으로”처럼 말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플리머스대 티모시 퍼펙트 교수는 귀로 들어 기억한 것도 언어로 묘사하게 하면 혼란스러워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퍼펙트 교수는 녹음한 음성을 실험 대상자에게 들려 주었다. 실험 대상자 절반은 조용히 있게 했고, 나머지 절반은 음성의 특징을 열심히 쓰게 했다. 그 결과 조용히 있던 사람이 녹음된 목소리를 훨씬 잘 기억했다.

심리학자들은 경찰이 증인 인터뷰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턱대고 불러다가 범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설명하라고 하는 것보다 쉬거나 음악을 들려 줘 증인의 기억을 보호하는 것이 낫다는 것. 기억에는 오히려 ‘침묵이 금’인 것이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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