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상대 ARS 퀴즈 ‘돈먹는 전화’ 사행심만 조장

  • 입력 2003년 2월 1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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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상대로 한 게임용 자동응답전화(ARS)의 상술이 갈수록 교활해지고 있다. 전화로 퀴즈게임을 하면서 정답을 맞히면 상품을 준다고 꾀어 장시간 통화토록 하고 요금수익을 챙기는 것. 최근에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게임과 무관한 만화영화 주제가와 인사말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통화시간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ARS 퀴즈 게임에 빠진 아이들=서울 송파구 S초등학교 3학년 이모군(10)은 방학 동안 어린이 방송채널에서 소개한 ARS 게임에 전화를 했다가 부모에게 크게 혼이 났다.

이군은 “경품으로 나온 게임기가 갖고 싶어 방송광고를 보고 4, 5번 전화를 한 것뿐인데 지난달 전화요금 통지서에 정보이용료가 2만원이나 더 붙어 나왔다”며 “요금이 그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최모군(11·서울 성북구 H초등학교)도 “갖고 싶던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준다는 말에 몇 번 ARS 퀴즈에 참여했다가 정보이용료가 3만원이나 나왔다”며 후회했다.

ARS 퀴즈 게임은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성북구 한 초등학교 4학년 1개 반의 경우 전체 34명 중 17명이 한 번 이상 어린이 방송의 ARS 퀴즈나 게임에 응모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평균 이용금액은 한 달에 1만원, 최고 5만원인 경우도 있었다.

▽유치한 시간끌기=1분이면 충분한 퀴즈 게임을 업체들은 5, 6분씩으로 늘리고 있다. 게임 중간에 만화영화 주제가나 안내방송을 틀어주는 것.

최근에는 한달간 성적을 결산해 상품을 주는 게임까지 등장해 아이들이 한달 내내 전화를 붙들고 게임에 매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임 방식도 한 번의 실수 없이 모든 단계를 정확히 맞히도록 어렵게 만들어 통화시간을 10∼15분으로 늘리고 있다. 이 경우 1회 이용료만 4000∼6000원에 이른다.

J사가 제공하는 전화를 이용한 ‘탑블레이드 게임’의 경우 회원 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 입력, 게임 진행방식 설명, 로그인, 블레이드 선택과 옵션 선택 등 게임 준비를 하는 데만 7분이나 걸렸다.

▽문제점=현재 어린이TV JEI스스로방송 투니버스 겜비씨 온게임넷 등 어린이·청소년 대상 5개 유선방송에서 ARS 퀴즈 게임을 하나 이상 내보내고 있는 업체는 J사, K사, G사 등 5곳 정도.

그러나 이 중에서 지난해 9월 방송위원회가 시정권고한 ‘1회 이용에 예상되는 평균 이용요금’을 표시한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지난해 9월 이후 ‘30초당 몇백원’ 하는 식의 정보이용료 표시만 ‘06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 밑에 조그맣게 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얼마의 요금을 쓰는지 알지도 못하고 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국 통신팀 최은실 차장은 “어른들의 얄팍한 상술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사행심만 조장하고 있다”며 “최근엔 ARS를 이용해 신용카드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전화번호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편법까지 등장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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