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학자 다녀간 뒤 이공계 열기 후끈"

  • 입력 2003년 1월 14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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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박사가 14일 길동자연생태공원에서 어린이들에게 쇠뜨기 조상의 화석을 보여주며 옛 생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병기기자
이정구 박사가 14일 길동자연생태공원에서 어린이들에게 쇠뜨기 조상의 화석을 보여주며 옛 생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병기기자
14일 서울 길동자연생태공원.

“봄이 되면 연못 주변에 쇠뜨기가 자라죠? 2억년 전에 지구에 등장한 쇠뜨기의 조상은 길이가 15m나 되지만 모양은 지금과 거의 비슷해요. 쇠뜨기도 ‘살아 있는 화석’입니다.”

이날 ‘과학기술 앰배서더(홍보대사)’로 나온 이정구 박사(국립중앙과학관)는 학생들에게 습지에 살던 옛 생물들에 대해 설명했다. 크기가 50m나 되는 고사리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던 어린이들은 이 박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처음 생명체는 무었이었나요”라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바빴다.

‘청소년과 과학자와의 만남’을 내건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이 지난해 10월 처음 시작된 뒤 초중고교 등 각급 학교와 단체에서 큰 인기를 모으며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동아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 동아사이언스가 공동 주최하는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은 교수, 연구원 등 과학자들이 직접 청소년들을 찾아가 강연을 하며 과학자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활동. 최근 심각한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됐다. 430명의 과학자들이 앰배서더에 참가해 ‘과학 알리기’에 나섰으며, 현재 100회 남짓 강연이 열렸다. 학교 방문 강연회는 앰배서더 활동이 끝나는 5월까지 150회 정도 더 열릴 예정이다.

신문이나 TV에서만 보던 과학자와 직접 만난 학생들은 멀게만 생각하던 과학자들의 세계를 한결 생생하게 느꼈다. 과학자가 되기 위한 ‘역할 모델’을 가까이서 찾은 것이다. 13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장열 박사의 강연을 들은 차현근군(충북 용암중2)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어 재미있었다”며 “로봇이나 비행기를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앞으로 이 분야의 과학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박원석군(용암중1)도 “과학자를 본 것은 처음인데 생각하던 것보다 과학자가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다녀간 학교에는 이공계 열기가 뜨겁게 피어났다. 경기 효명종합고 윤지원 교사는 “학교에 온 윤기윤 서울대 교수가 이곳 출신이라 더 효과가 좋았다”며 “학생들이 좋은 직장을 가진 선배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더 많이 갖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제주 한림중 고용철 교사도 “서울을 제외하면 사실 청소년이 과학자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드물다”며 “강연이 끝난 뒤 학생들이 강연자에게 다음에도 와달라고 부탁하는 등 분위기가 뜨거웠다”고 강조했다.

명성여자중을 찾아간 뉴텍특허사무소 주재만 이사는 “변리사가 이공계 여성에게 아주 잘 맞는 전문직이라는 것을 설명해 줬더니 이공계로 진로를 정한 여학생들이 꽤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학교의 교사들도 학생들이 과학에 대한 흥미가 더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앰배서더 활동은 강연에 나선 과학자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한 차례씩 방문한 황종선 교수(전남도립 담양대)는 “강연을 준비하며 내가 살아온 과학자의 길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부산대 정세영 교수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으며, 앞으로 자원봉사하는 것처럼 학생들을 자주 찾아가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교사들은 앰배서더 활동과 같은 과학자와의 만남 행사가 앞으로 꾸준하게 펼쳐지면 심각한 이공계 기피 현상도 다소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 참가자들은 앞으로 강연과 함께 소수의 학생과 과학자의 대화 시간을 늘리고, 과학자가 일정 기간 동안 인터넷으로 학생을 지도해 주는 1 대 1 멘토링(후견인)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규 교수(안산1대학)는 “궁극적으로 우수 과학자들이 의사, 한의사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이런 활동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최영환 과학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

최영환 이사장

“과학자들이 연구실 밖에서 직접 청소년과 학부모를 만나 과학의 미래를 얘기하고 과학에 대한 이해를 확산하는 것이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의 요점입니다.”

지난해부터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을 추진해온 과학문화재단 최영환 이사장을 만나 이 사업을 시작한 동기와 의미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과학계의 화두는 우수한 청소년들이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마침 영국에 갔을 때 과학자들이 나서 학생들에게 과학하는 마음을 갖도록 일깨우는 앰배서더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참고가 되었죠.”

―금년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의 중점 운영 방향은….

“지난 한 해 동안 100여회 학교와 청소년을 찾아가 강연했는데 이제 내실을 다지고 효율적으로 만들 시점입니다. 이를 위해 강연뿐 아니라 멘토링, 실험지도, 영상물 보급 등으로 활동을 다양화할 계획입니다. 물론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활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과학자들이 대중 활동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과학문화 콘텐츠의 확보가 절실한 과제입니다. 인터넷, 방송, 신문 등 각종 매체가 급성장하는데 아직도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콘텐츠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재단에서는 재미있고 쉬우며 유익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금년에 65억원을 확보했습니다. 행사 프로그램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주변에서 항상 과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수돗물처럼 꼭지만 틀면 언제나 쓸 수 있듯이 말이죠.”―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1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현은 과학문화 확산과 궤를 같이 합니다. 중국은 작년에 과학기술보급법을 바탕으로 상하이 베이징 등 각 지역에서 과학문화사업을 시작했죠. 우리도 체계적인 과학문화 사업을 위해서는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현 동아사이언스기자 d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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