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 ‘실버넷’ 꾸미는 대학생과 실버기자들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7시 33분


인터넷 신문을 함께 만드는 2030세대와 5060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민호 이건혁 장명자 변노수 노아실 김영기씨.손효림기자
인터넷 신문을 함께 만드는 2030세대와 5060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민호 이건혁 장명자 변노수 노아실 김영기씨.손효림기자
“할아버지, 한 문장에 ‘∼드시고, ∼드시고’가 2번 중복되면 이상해요. ‘∼감상하고, ∼맛볼 수 있는’으로 고치면 어떨까요?”

50, 60대층의 ‘사이버 세상’인 ‘실버넷’(www.silvernet.ne.kr)의 편집위원 이건혁씨(한양대 신문방송학과)는 이제 스물다섯. 그러나 그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아버지뻘 기자 13명을 거느린 어엿한 ‘데스크(desk)’급 간부다. 나이든 기자들이 송고한 기사를 날카롭게 ‘손봐주는’ 일을 벌써 5개월째 해오고 있다.

처음엔 나이차 때문에 의사소통이 껄끄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노년 세대의 생각을 폭넓게 이해하게 됐다고 이씨는 말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생각도 갖게 됐다.

노인들의 삶과 문화를 전하는 인터넷 사이트 ‘실버넷’의 ‘기자마당’은 학보사 출신의 20대 대학생 ‘데스크’ 4명과 50, 60대 남녀 ‘노인 기자’ 13명이 꾸려가고 있다.

사회 문화 복지는 물론 껄끄러운 노인의 성(性)문제와 민감한 정치 이야기도 거론하는 토론마당이다. 농촌지역 실버기자가 환경오염을 고발한 기획 기사는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난 5개월간 실버기자들이 올린 기사는 100여건에 달한다.

실버넷 뉴스는 인터넷과 메신저를 이용하는 신세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실버기자들이 e메일로 초고를 보내면, 어린 데스크들이 가차없이 기사를 손질해 다시 e메일로 송고하고 최종적으로 실버넷 홈페이지에 띄워진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은 2개월에 한번 정도. 이때는 데스크와 기자들이 난상토론을 벌이며 세상을 보는 시각, 노인들의 현안 등을 토의한다. 도시락 식사를 겸한 2시간의 ‘편집회의’를 위해 경남 창원, 광주와 전남지역에 있는 실버기자들도 예외없이 참석한다.

5060세대와 2030세대가 ‘사이버 세상’을 통해 매일 머리를 맞대면서 세대간 간극과 이질감도 봄 눈 녹듯 사라졌다. 나이든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던 인터넷에 대한 소외감도 이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젊은이는 노년세대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노년세대는 젊은이로부터 ‘펄펄 뛰는 세상’을 경험한다.

이씨와 같은 ‘데스크’인 노아실씨(21·여·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는 최근 ‘실버 기자’ 한 명으로부터 따뜻한 정이 담긴 e메일 한 통을 받고 울 뻔했다.

‘…스무살 젊은 나이에는 할 일이 참 많지? 젊다는 건 그만큼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말 일거야. 그러니까 큰 꿈을 갖고 열심히 해 줘….’

“마음 한편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어요. 또래 친구에게서 받는 편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더군요….” 노씨는 이화여대 학보사 편집국장을 지내 ‘데스크’ 중에서는 가장 매섭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자원봉사단체인 실버넷운동본부는 2000년 9월부터 8기에 걸쳐 기수당 32시간씩 전국 3만2000여명의 실버(55세 이상)세대를 대상으로 인터넷 무료교육을 실시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격차를 줄이자는 취지였다. 이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친 사람도 2030세대. 대학원생 877명, 대학생 3872명이 바쁜 시간을 쪼개 강사와 조교로 자원봉사에 나섰다. 전국 123개 대학도 기꺼이 강의실과 PC를 제공했다.

실버기자 장명자씨(63·여)는 “2003년에는 더 열심히 실버세대의 생각과 마음을 인터넷에 띄울 것입니다. 인터넷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며 오히려 세대의 격차를 줄여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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