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술은 여성 건강의 적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13분


직장생활 2년차인 회사원 이윤주씨(26·여)는 회식 때마다 만만찮은 술 실력을 과시한다. 덕분에 ‘술 잘 마신다’는 말을 들으며 사회생활도 잘하는 여자로 대접받는 이씨. 그러나 술에 있어서는 천하무적이라던 이씨가 최근 호기롭게 술을 먹다 정신을 잃어 두 번이나 동료들에 의해 집으로 옮겨졌다.

병원을 찾은 이씨에게 의사는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사실 이씨도 술이 싫지만 남자에게 지지 않으려고, 또 ‘여자라서 술자리에서 뺀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남녀가 평등한 시대라고 술자리에서도 ‘남녀가 따로 있느냐’며 여성에게도 술을 똑같이 권하는 게 요즘의 대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술 마시는 데 있어 ‘여자이니까’라는 말은 의학적으로 일리 있는 변명이라고 지적한다. 술은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더 나쁘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는 남녀 구별해야〓여성은 남성보다 체지방의 비율이 높고 수분량은 적어 똑같이 술을 마셔도 체내 알코올농도가 더 높아진다. 술은 지방과는 상관이 없으며 체내의 수분과 섞이기 때문이다.

또 여성은 대체로 알코올분해효소가 남성보다 적게 분비된다. 같은 술을 먹어도 여성의 간이 빨리 나빠지며 이로 인한 사망률은 남자보다 5배 정도 높다.

알코올은 여성의 호르몬체계에 변화를 일으켜 생리 불순이나 생리통을 유발하며 불임과 조기 폐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매일 두 잔의 술을 마시면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25%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임신 중 음주는 더욱 나쁘다. 유산과 사산, 저체중아 출산의 원인이 된다. 특히 임신 초기의 음주는 ‘태아 알코올증후군’의 원인이다. 이런 아기는 자라서 평균 지능지수 70으로 평생 학습장애가 나타나며 안면기형과 심장기형, 성장 발달장애를 보인다.

술은 피부에도 나쁘며 칼로리도 많아 복부 비만을 부른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남성들이 이런 점을 모르고 여성에게 술을 강요하며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술을 잘 마셔야만 멋진 신세대 여성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알코올중독〓실제로 여성 음주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 음주자는 비음주자에 비해 자살률이 약 4배 높으며 특히 20대와 40대 여성이 많다.

보건복지부가 2월에 전국 성인 6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성 알코올중독자는 84년 42.8%에서 25.8%로 줄어든 반면 여성 중독자는 2.2%에서 6.6%로 증가했다.

여성 알코올중독자는 과거에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 정신과 질환을 겪었을 확률이 48.5%에 이른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여성의 알코올중독은 늦게 발견되고 빨리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라며 “정신과 질환을 가진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고 말했다.

여성은 ‘부엌 알코올중독(kitchen alcoholic)’이라 해서 남편과 아이들이 나간 낮시간에 혼자 술을 먹고 저녁 때에는 깨어 있어 가족들도 잘 모른다는 것. 어머니가 알코올중독이면 아버지가 그런 것보다 아동학대의 위험성도 훨씬 높다는 게 남궁 교수의 설명이다.

▽성(性) 문제의 원인도 술〓술은 판단력을 떨어뜨려 의사 결정능력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평소라면 그러지 않을 사람과 술을 먹고 성관계를 갖게 되는 일도 흔하다. 술에 취했을 때는 ‘안전한 섹스’에 대한 관념이 없어져 성병이나 에이즈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을 할 수도 있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 된다.

한국음주문화정보센터 제갈정 연구개발팀장은 “여성이 술에 취하면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며 ‘싫다’는 의견을 분명히 말하기가 힘들어져 위험하다”고 말했다. 술 취한 여성이 강간이나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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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NO"라고 말하라

미국 국립알코올연구소(NIAAA)가 정한 음주 한계치는 여성의 경우 1주일에 7잔, 1회 3잔 이내다. 남성은 1주일에 14잔, 1회 4잔 이내. 한 잔은 소주면 일반적인 소주 잔으로, 맥주면 통상적인 맥주잔보다 조금 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연세대 의대 남궁기 교수는 “이 수치는 알코올 흡수에 별 문제가 없는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누구나 이만큼 먹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정도의 양을 지킨다 하더라도 여성은 △임신이나 수유 중일 때 △체격이 작은 경우 △질병이나 정신적 문제가 있을 경우 △다른 약을 복용하고 있을 때 △알코올로 인한 문제 경험이 있을 때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술은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것보다 자주 마시는 것이 더 나쁘다. 술을 마시고 최소한 2, 3일 이상 지나야 간이 회복되므로 그 이전에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시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여성들은 술 마실 때 ‘안주발’을 세운다고 눈총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안주를 충분히 먹는 것은 위에 부담을 덜 주는 한 방법이다. 비슷한 이치로 술은 꼭 식사 뒤에 마셔야 한다. 빈 속에 술을 마시면 속을 버린다. 만약 술을 마신 뒤 배가 고파 식사를 하면 다 ‘살로 가는’ 결과가 초래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술자리에서 당당하게 ‘노(No)’라고 말하는 것. 스스로 음주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마실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잊지 않도록 한다.

또 여성은 자신이 술과 관련된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변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숨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대부분 문제가 더 커진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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