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세상]‘모험가 체질’은 선천적일까?

  • 입력 2002년 5월 14일 18시 15분


얼마 전 S대의 젊은 교수를 알게 됐다. 그는 유명대 교수직에 만족하지 않고 재산을 털어 벤처회사를 차렸다. 또 급가속할 수 있게 개조한 차를 몰고 다닌다. 서울 대전을 한시간만에 주파하는 속도광이다. 그의 꿈은 벤처 기업가로 성공해 최고급 스포츠카 페라리를 사는 것이다.

‘아찔한’ 그의 인생을 보면서 사람은 모험을 즐기는 성격과 조심스런 성격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일까, 유전자일까? 140여년 전 멘델이 유전법칙을 내놓은 이래 환경과 유전자 중 어느 것이 성격과 행동을 결정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계속돼 왔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각종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이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큰 관심거리는 ‘모험 유전자’란 이름이 붙은 D4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다.

도파민은 뇌에서 쾌감을 일으키는 중요한 신호전달물질이다. 신경세포 바깥에 있는 도파민 수용체는 도파민이 와서 결합하면 세포 안으로 신호를 전달해 뇌가 흥분하게 만든다.

이 유전자 한가운데는 반복되는 48쌍의 염기서열이 있는 데 사람마다 반복횟수가 다르다. 이 반복횟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다시 말해 유전자의 길이가 긴 사람일수록 도파민과의 결합력이 약하다. 따라서 쾌감을 느끼는데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모험을 즐기고 새로움을 추구하고 마약에 빠지기 쉽다.

조종사 소방수 주식거래인에는 모험 추구형이 적합하다. 반면 회계사 기계공 치과의사 프로그래머로는 그 반대의 성격이 어울린다. 조심스런 사람이 위험한 직업을 선택하면 심리적 소모가 커서 불안에 빠진다. 이미 미군은 병사의 성격을 분석해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특공대를 권하고, 모니터를 감시하는 레이더 부대에는 반대의 사람을 배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전자 검사로 직업까지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대답은 아직은 ‘노’이다. 과학자들은 성격 등 인간의 특징이 단 하나의 유전자로 결정된다고 보지 않는다. 관련된 유전자가 10종은 고장나야 암이 발병하듯이 성격도 오케스트라처럼 여러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D4 뿐 아니라 D2 등 다른 유전자도 모험 행동에 관여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성격이 유전자의 조합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북채와 북이 모두 있어야 소리가 나듯 유전자는 환경을 만날 때 비로소 발현된다. 이를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이론’이라고 한다. 전통적 환경론자는 환경을 바꾸면 성격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상호작용론자는 유전자의 발현으로 형성된 성격은 좀처럼 바꿀 수 없다고 본다.

배우자가 번지점프를 즐긴다면 무조건 뜯어말리기보다는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는 더 좋은 일을 찾게 도와주고, 자녀에게는 유전자가 발현되는 유아 청소년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라는 것이 최근 등장한 ‘유전자-환경 상호작용론자’의 충고이다.

신동호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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