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혁신,기업을 살린다(중)]기업이 작아진다

  • 입력 2001년 8월 27일 18시 44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한 은행에서 갑자기 전산시스템이 고장난다. 줄줄이 기다리는 고객들. 시스템 공급자인 컴팩의 콜센터로 긴급 수리를 요청한다. 30분도 안돼 엔지니어와 부품이 도착하고 2시간 안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다(이상 가상 사례).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수리공은 컴팩에서 파견되지만 그와 동시에 부품은 물류회사인 TNT의 창고로부터 온다. 컴팩이 유럽시장의 수리 관련 물류 전체를 TNT에 맡겼기 때문이다.

자동차회사 피아트는 아예 생산에 필요한 모든 부품 조달까지 TNT에 맡겼다. 아웃소싱을 통해 최근 3년간 피아트가 절약한 비용은 전체 물류비의 37% 정도. 2만3000여가지의 부품들을 제때 조달함으로써 생산효율을 높이고 고객서비스가 더 좋아진 것을 포함하면 피아트가 얻은 효과는 비용 절감 이상이다.

▼ 글 싣는 순서▼
<상>물류회사가 IT기업으로
<중>기업이 작아진다
<하>재래시장이 사라진다

인터넷과 정보기술을 이용한 기업 혁신이 진전되면서 회사의 특정 분야를 전문 회사에 맡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생산조달과 수리서비스 등 한 분야를 통째로 아웃소싱할 수 있는 것은 기업 사이에 고도의 인터페이스를 가능케 하는 정보기술과 각 기업의 특성에 맞춘 종합 컨설팅서비스. TNT의 e물류 담당카타리나 올롭슨 사업본부장은 “물류 전체를 전문회사에 맡김으로써 컴팩이나 피아트는 디자인과 상품생산, 마케팅 등 핵심분야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추가 투자를 최소화하라〓온라인쇼핑몰을 개척하는 데 서로 다른 전략을 채택한 테스코와 세인즈베리는 결과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낳았다. 두 회사는 영국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슈퍼체인 업체. 세인즈베리는 온라인쇼핑 물건을 배달하기 위한 물류창고를 따로 만들었다. 기존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쇼핑 상품을 정확하게 집어 배달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 반면 테스코는 기존 매장의 정보기술 시스템을 보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테스코가 온라인쇼핑몰 테스코닷컴에 6년동안 투자한 액수는 모두 1000억원가량. 테스코닷컴은 지난해까지 매년 100억원 가량의 적자를 봤지만 올해부터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영국의 95%를 커버할 수 있는 배달체계까지 갖췄다. 반면 세인즈베리는 아직도 연간 800억원가량의 적자를 보고 있다.

▽상품의 흐름과 정보의 흐름을 일치시켜라〓테스코닷컴의 투자 중 상당부분이 전문 피킹(picking)지원 시스템인 ‘팀패드’ 개발에 들어갔다. 런던 근교 포터스바 마을의 테스코매장에서 살펴 본 팀패드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르바이트 사원이 PDA처럼 생긴 단말기를 들고 나서면 화면에 여러 고객의 주문내용이 뜨고 어떤 상품이 매장 6번째줄 왼쪽 32번째칸에 있다는 내용까지 뜬다. 물건을 집어 팀패드에 갖다 대면 현재 매장에 이 물건이 몇 개 남아있는지 나온다. 온라인쇼핑몰을 위해 개발한 시스템이 매장의 재고를 낱개 한 개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게 하는 등 오프라인까지 혁신시킨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가 있는 TNT는 ‘i커넥션’ ‘오스카워크데스크’ 등의 시스템을 통해 물건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고객이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바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한다. 컴팩은 TNT에 수리관련 물류를 맡긴 뒤 유럽의 중앙창고를 3개에서 1개로 줄였다. 각 창고가 구비해야할 부품 종류도 크게 줄었다.

<런던·암스테르담〓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전문가 한마디

정보통신 기술 및 인터넷이 널리 활용됨에 따라 21세기 기업경영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에 모으고 여러 분야에서 인터넷을 통한 거래가 가능해졌다. 이는 지역 기업들의 세계적 경쟁을 촉진시키면서 동시에 세계적 기업의 지역화를 유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기업들은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첫째, 조직들을 간소하고 유연한 형태로 유지한다. 테스코나 K마트가 기업과 소비자간(B2C) 전자상거래를 위해 대규모 신규 투자보다 기존 매장을 최대로 활용해서 위험을 줄이고 시장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기업들은 각각의 핵심 역량에 근거하여 가치사슬의 중심에 섬으로써 전체 산업계가 관계망으로 형성되고 있다. 네트워크상의 개별 기업들은 자사의 핵심 역량에 주력하면서 운영 효율과 시장 창출을 동시에 추구한다. 우편 특송 물류 등의 사업을 하던 TNT가 기업물류 전체를 외주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 그 예다.

셋째, 기업들은 정보통신기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연계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테스코가 수십만종의 상품을 영국 전역에 25분 안에 배달할 수 있도록 배달차의 자동운행루트를 계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나 TNT가 모든 물류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 등이다.

허순영(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syhuh@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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