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의사-약사 "네탓" 비방전 심화

  • 입력 2000년 8월 3일 19시 57분


‘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입니다. 요즈음 제가 원외처방을 하면서 느낀 결론은 약사들, 특히 나이먹은 약사들은 무지한 바보들이란 것입니다. 자기가 권한 약이 무슨 종류인지도 모르더군요.’

‘동네의원은 처음부터 의사가 약을 용량대로 처방하지 않는다. 조제학적 지식도 없는 무자격자가 약을 기계적으로 혼합해 주고 있다. 의사도 조제학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항도 잘 모르고 있다.’

요즘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와 언론계 인터넷 사이트에는 의료계와 약계가 서로를 비난하는 E메일이 끊이지 않는다. 의사와 약사들이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내용이다.

약사들은 의사들이 생산이 중단된 약을 처방하거나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처방전을 작성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사들은 전문지식이 부족한 약사들의 처방전 문의전화 때문에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반박한다.

한 내과 개원의는 “제산제를 처방했는데 약사가 소화제를 조제했다”며 “환자가 처방전과 다른 약을 먹었는지 모를 경우 증거가 없는 약화사고는 의사가 책임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의사도 “처방전은 10년이 넘는 의학공부와 임상의 ‘결정체’이므로 약사들이 하루아침에 이를 이해할 수 없다”며 “환자들이 약국에서 지어온 약을 보면 처방전대로 따르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약사는 “3200원짜리 약을 쓰면 충분한 단순 포진 증상에 의사가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2만9000원짜리 수입약을 처방해 약사와 환자를 모두 골탕먹인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S약국의 약사는 “인근의 한 병원에서 소염진통제인 ‘알타질’ 주사제를 처방했다”며 “이 주사제는 아스피린제제로 알약을 쓰는 게 훨씬 편한데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주사제로 처방하는 의사가 어디 있느냐”며 분개했다.

의약분업의 당사자인 의료계와 약계의 대립 및 비협조 때문에 불안해하고 불편을 겪는 건 환자들뿐이다.

복지부의 비상진료대책본부에는 ‘팔 인대가 끊어진 환자에게도 의사가 주사제를 사오라고 한다’ ‘대형병원 앞 문전약국은 약 준비가 잘 됐다고 하지만 6곳을 들렀는데도 처방약을 구하지 못했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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